하루 아침에 전재산 잃은 속초 주민들, 40년간 노력 '물거품'

입력 2019.04.05 13:34수정 2019.04.05 14:11
"금방 진화될 줄 알았는데…" 공포에 떨며 밤샘
하루 아침에 전재산 잃은 속초 주민들, 40년간 노력 '물거품'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이 이틀째 계속된 5일 오후 속초시 영랑동 속초의료원에 전날 이송됐던 환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2019.4.5/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하루 아침에 전재산 잃은 속초 주민들, 40년간 노력 '물거품'
강원 고성·속초 일대 산불이 이틀째 계속된 5일 오후 속초시 영랑동 한 창고에 놓인 계란이 까맣게 타 있다. 2019.4.5/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금방 진화될 줄 알았는데…공포에 떨며 밤샘
여름장사 기대하던 속초항 상인들 "누가 오겠나" 한숨

강원 속초시 영랑동에서 참숯과 계란 도매업을 하는 70대 김모씨는 하루아침에 전재산을 잃었다. 40여년 동안 지켜온 일터가 불길에 타들어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불에 타고 있던 나뭇가지가 떨어져 뒷산에 불이 붙었고, 그가 가진 창고 4개 중 3개는 삽시간에 주저앉았다.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 덕분에 계란 창고는 겨우 건졌지만 안에 쌓아둔 계란 3000여판, 10만개 가량은 냄새가 배 버려야 할 처지다. 그는 "언덕에서 '지옥불'이 다가오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면서 빗자루질을 이어갔다.

전날 오후 7시쯤 강원 고성 토성면 인근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불은 반나절만에 속초와 강릉 시가지 일부까지 집어삼켰다. 고성 산불현장대책본부는 이날(5일) 오전 6시 기준 산림 250ha(헥타르)가 소실됐다고 밝혔다. 축구장 350개 면적과 맞먹는다. 불길 속에 밤을 지새운 주민들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고 입을 모았다.

속초에 사는 김모씨(69)는 오후 9시께 속초의료원에서 보낸 긴급대피 문자를 받고 시어머니 김광자씨(97)를 모시러 왔다. 전날 저녁 의료원 뒤쪽 담벼락까지 불이 번진 탓에 건물로 불씨가 연신 날아드는 것도 가까이서 목격했다. 김씨는 "저녁에 의료원에 도착했을 때는 눈·코가 매워 혼났다"면서 "어머님이 폐렴이라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연기와 먼지 때문에 건강이 악화할까봐 걱정이다"고 말했다.

30대 박모씨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친구 결혼식이 걱정이다. 고성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올 수 있냐'면서 전화를 했다. 그는 "'절친'이라 꼭 참석할텐데 좋은 날 매캐한 냄새가 가득할 까봐 친구의 목소리에 걱정이 짙게 묻어났다"고 전했다. 해당 예식장 측 관계자는 "산불의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내일까지 근처 탄내는 계속될 것 같다"고 전했다.


날이 풀려서 봄·여름 나들이 장사를 기대했던 상인들도 울상이 됐다. 속초 동명동 속초항 인근의 한 횟집주인은 "바닷가는 탄내는 안나지만, '속초가 불탔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데 누가 쉽게 놀러 오겠느냐"면서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다친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도 덧붙였다.

[특별취재단] 박상휘 권혁준 황덕현 김구용 서영빈
홍성우 서근영 고재교 이찬우 김경석기자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