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 먹으려 6시에 첫 차" 4시간 동안 기다린 점심 한끼

입력 2019.04.06 09:59수정 2019.04.06 11:03
"가족과 함께 살아도 집에서 눈치만…밥 해달란 얘기 못해"
"무료급식 먹으려 6시에 첫 차" 4시간 동안 기다린 점심 한끼
지난 4일 서울시 종로구 한 무료급식소 앞에 300여 명의 노인이 점심을 먹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편집자 주] '노인情'은 지금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지난 4일 방문한 종로 인근 무료급식소 앞엔 수백명의 노인이 줄을 지었다. 일부 노인은 인터뷰를 청하는 취재진에게 "무료급식 먹는다고 소문낼 일 있냐. 좋은 일도 아닌데 망신당하기 싫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종로3가 대로변에 위치한 이 무료급식소는 일주일에 3일간 10시 30분, 11시 30분, 12시 30분 3회에 걸쳐 점심식사를 제공한다. 노인들이 장시간 대기하는 걸 막기 위해 약 7시부터 번호표를 나눠주고, 배식하기 1시간 전에 줄을 서도록 하고 있다.

무료급식소의 수용 인원은 약 150명.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노인들은 또 1시간을 길가에서 대기해야 한다.

수백명의 노인이 모이다 보니 앞자리 번호표를 뽑는 것은 쉽지 않다. 첫 배식이 시작하는 10시 30분에 식사를 하기 위해선 아침 7시 전에 급식소에 도착해야 한다.

이날 한 노인은 8시에 도착했지만 먼저 온 사람이 많아서 11시 30분짜리 번호표를 뽑았다. 줄을 서지는 않지만 번호표를 받고도 최소 3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는 셈이다.

"무료급식 먹으려 6시에 첫 차" 4시간 동안 기다린 점심 한끼
지난 4일 서울시 종로구 인근 한 무료급식소. 오전 7시부터 와서 번호표를 뽑은 노인들이 11시 반까지 기다리다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다른 급식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약 20석 정도가 마련된 탑골공원 인근 한 무료급식소엔 하루 250명 정도의 노인이 찾아온다. 배식은 11시 반부터 시작하고 번호표 순으로 입장한다.

이날 첫 번째로 식사한 A할아버지는 6시 42분에 도착해서 번호표를 뽑았다. 그는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안 좋은 생각만 들어서 매일 이곳에 온다"며 "아침에 첫 차 타고 와서 번호표를 뽑고 4시간 동안 돌아다닌다. 갈 데가 없어서 지하철 타고 왔다갔다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 B할아버지는 이 한 끼를 먹기 위해 의정부에서 첫 차를 타고 왔다. 할아버지는 "무료급식으로 하루에 한 끼 겨우 먹는다"며 "날이 따듯해져서 망정이지 한 겨울에 밥 먹으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면 몸도 마음도 참담해진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이어 "자식이 있어도 지금이 어디 손 벌릴 수 있는 세상인가"라며 "줄 서 있는 노인이 많으니까 빨리 밥 먹고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다들 나같은 노인들이지 않나"라고 씁쓸해했다.

무료급식소에 오는 모든 사람이 독거노인이거나 기초생활수급자인 것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집에 있기 눈치가 보여 무료급식소를 찾는다는 노인도 있었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아들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는 C할아버지는 "며느리와 하루 종일 단 둘이 집에 있으면 지옥이 따로 없다"며 "대놓고 눈치주는 건 아니지만 밥이라도 달라고 할 수 있겠나. 밖에서 시간 떼우다 최대한 늦게 집에 들어가는 게 일상이다"고 털어놨다.

"무료급식 먹으려 6시에 첫 차" 4시간 동안 기다린 점심 한끼
지난 4일 한 무료급식소에 첫 번째로 도착한 노인은 6시 42분에 번호표를 뽑았다. 이날 메뉴는 비빔밥이었고 사진에 나타나진 않지만 미역국도 준비됐다. [사진=윤홍집 기자]

약 27년 동안 종로에서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있는 사회복지원각에 따르면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인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소회복지원각 총무 강소윤 씨는 "예전엔 하루에 120명 정도 오던 노인들이 지금은 230명 이상 오고 있다"며 "노숙자나 독거노인이 대부분이지만 집에서 대우받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노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강 씨는 "가족이 있고 경제적으로 조금 낫다고 해서 무료급식소에 못 올 이유가 없다"며 "이분들도 사회에서 버림받고 외로운 건 똑같다. 조금 더 노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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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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