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뉴스1) 홍성우 기자 = 남편을 떠나보낸 뒤 17년간 한 집에서 같이 살던 80대 본처를 살해한 70대 후처 할머니가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면치 못했다.
서울고법 춘천1형사부(부장판사 김복형)는 3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73·여)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우발적 범행인 점, 수사기관에 자수 한 점은 유리한 정상이지만,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했고, 수십년간 함께 살아온 사람을 살해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고 뚜렷한 살인의 동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농아인 A씨는 지난해 9월7일 오전2시~4시 사이 잠자고 있던 본처인 B씨(89)의 얼굴을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와 B씨의 기구한 만남은 53년 전인 1966년으로 올라간다.
본처인 B씨가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자 A씨가 후처로 들어와 2남1녀를 출산했다.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로 어린 시절부터 듣거나 말하지 못한 A씨는 가난으로 학교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정식 수화마저 배우지 못했다.
자녀들은 본처인 B씨 자녀로 출생신고가 됐고, 후처는 의사소통 제약으로 자녀들로부터 소홀히 대우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집안의 궂은 가사일은 후처 몫이었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딸은 지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인 2001년 남편마저 세상을 떠났다.
자녀들이 장성해 집을 떠난 뒤에도 A씨는 본처 B씨와 함께 17년간 살면서 집안일을 전담했다.
그러다 두 할머니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 A씨가 식당 주방일을 하면서 저축한 1000만원을 B씨가 숨겼다고 오해한 것이다.
후처는 본처의 식사, 빨래 등 집안일을 전담하는 반면 본처는 주로 놀러 다니는 생활을 했다.
본처는 술을 마시고 귀가하면 잠을 자고 있는 후처를 흔들어 깨웠다. 후처는 불만이 컸음에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불만을 속으로 삭인 채 생활했다.
사건 당일, 그날도 본처는 술을 먹고 들어와 잠자던 본처를 수차례 깨웠고, 후처는 잠을 자지 못한 채 뒤척이다가 본처와 함께 생활하면서 쌓여온 불만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후처는 갑작스러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본처를 살해했다.
후처의 살인으로 52년간의 기구한 만남은 비극으로 끝났다.
후처 할머니 자녀들은 “피고인이 오랜 기간 듣지도 못하고 소통도 힘든 생활 속에서 항상 가족의 뒤편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생각하면 그 또한 너무 가슴이 아프고, 그 괴로움과 고통을 미리 헤어리지 못한 우리가 너무도 원망스럽다”고 자책했다.
재판부는 “본처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후처로부터 자녀들을 얻는 것을 한 집에 살면서 직접 목격해야했고, 평생 후처와 남편의 자녀들을 자신의 자녀들처럼 키워냈음에도 후처의 범행으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