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임해중 기자 = 현대자동차가 신용카드사 5곳과 가맹 계약해지를 결정했다. 현대차로선 수익성 악화 방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카드업계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사태는 경영위기에 처한 자동차 시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수수료율 인상에 나선 카드업계와 자동차 업계간 대리전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현대차 결정에 동조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는 수수료율 인상을 일방 통보한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삼성카드 등 5개 카드사와의 계약을 10일부터 해지한다고 4일 밝혔다.
이번 갈등은 신용카드 5개사가 3월부터 수수료율을 인상한다는 내용을 현대차에 통보하며 불거졌다. 현대차는 이의제기 공문을 발송하고 현행 요율을 유지한 상태에서 협의를 계속하자고 요청했으나 카드사들은 이달 1일부터 수수료율 인상을 강행했다.
현대차가 신용카드 5개사 결정에 강하게 반발한 배경에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경영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금융수익을 더 거두려는 조치에 대한 반발이 자리잡고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IFRS 회계기준 적용 이후 최저 실적으로 자동차부문 영업이익률은 이보다 더 낮은 1.4%에 그쳤다.
반면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의 지난해 ROA(총자산 이익률)는 1.88% 정도로 알려졌다. 금융사들 ROA는 제조업의 영업이익률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산업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나 각 산업부문 1위인 신한카드 이익률이 국가 기간산업인 자동차 부문을 지탱하고 있는 현대차보다 높다는 의미다.
현대차를 제외한 다른 완성차 업체 상황은 더 어렵다. 한국지엠(GM)은 4년간 총 3조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는 군산공장 폐쇄 및 판매 급감까지 겹쳐 실적이 더 악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쌍용차도 2017년 1분기 이후 8분기째 적자를 내고 있다.
차를 제조해 판매해 일자리와 기간산업을 챙기고 있는 완성차 입장에서 수수료로 더 많은 수익을 거두고 있는 카드 업계가 이를 더 인상해달라고 나오자 상당한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차를 만들어 팔아 벌어들인 돈이 고스란히 카드사 곳간으로 흘러들어갈 처지에 놓여서다.
완성차 업체들의 또 다른 불만은 계약관계인 카드사들의 일방적인 소통 방식이다. 현대차는 수수료율 인상 통보를 받은 후 카드사들에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8조의3 및 여신전문금융업감독규정 제25조의4에는 가맹점수수료율의 경우 객관적이고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정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맹점 표준약관 17조에 따라 가맹점은 카드사가 일방적으로 수수료율을 인상했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카드사의 적격비용에 근거해 선정된다. 적격비용은 자금조달 비용, 위험관리 비용, 마케팅 비용, 거래승인·매입정산 비용, 일반관리비용 등으로 구성된다.
올해 적용될 적격비용의 토대인 2015~2017년을 살펴보면 카드사들의 조달금리 하락이나 연체채권비율 감소 등 수수료율 인상요인을 찾기가 어렵다. 신한카드의 3년 평균 조달 금리는 4.29%(2012~2014년)에서 2.80%로 1.49%포인트 감소했다. KB국민카드도 2.67%에서 1.77%로 0.90%포인트 낮아졌다. 신한, KB국민, 삼성 등 주요 카드사의 연체비율도 감소했다. 데이터만 놓고보면 오히려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해야하는 게 맞다.
현대차 관계자는 "카드사들의 마케팅이 자동차사 매출 증대에 기여한다는 근거도 없어 수수료율 인상 요인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근거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원론적 답변으로만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갈등은 자동차업계와 카드업계간 대리전으로 여겨져 다른 완성차 업체들 움직임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한국GM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 역시 카드사들의 일방적인 수수료율 인상 통보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카드사의 수수료율 인상은 완성차 업체들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며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현대차 요청을 받아들여 후속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BC카드, NH농협카드, 현대카드, 씨티카드와의 계약만 남겨두는 쪽으로 방향을 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