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의 섬이자 4·3 아픔 극복한 제주 의미 더해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안서연 기자 = "제주 유채꽃의 향기와 한라산의 정치를 맛보며 타국에서 고단의 삶을 마감하고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2일 오전 제주시 애월읍 선운정사. 아리랑이 울려퍼지며 한반도가 그려진 보자기로 곱게 싼 유해 74위의 유골이 하나씩 차례대로 사찰에 안치됐다.
이날 오전 선운정사에서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됐던 희생자 유골을 모시는 안치식이 열렸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이 주최한 제1차 조선인 유골봉환 남북 공동사업 '긴 아리랑'의 마지막 일정이다.
이날 안치된 유골은 일제가 1938년 선포한 국가 총동원령으로 징용됐다가 일본 오카야마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이다.
이 유골들은 지난달 27일 일본에서 출발해 서울을 거쳐 이날 제주도에 도착했다.
안치된 유해는 모두 남측에 연고지를 뒀으며 아직 정확한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민화협은 선운정사에 임시로 유해를 안치하고 향후 비무장지대가 평화지대로 바뀌면 그곳으로 옮겨 남북 동포들이 모두 참배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안치식에는 그동안 이 유골들을 모셨던 일본 오사카 통국사 스님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사업 주최는 민화협이지만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을 조국에 보내자는 뜻은 전쟁 당시 적국이었던 일본 한 학도병의 의지에서 시작됐다.
故 후지키 쇼겐 스님은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에서 740명의 조선인 징병군을 지휘하던 일본군 학도병이었다.
그는 대부분 10대 후반이었던 조선인들에게 "일본이 곧 패망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견뎌보자"고 다독였다고 한다.
밤에는 곳곳에서 귀신 울음소리가 같은 것이 들렸는데 알고보니 '아리랑'을 목 놓아 부르는 소리였다. 학도병은 뜻도 모르는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전우애를 다졌다. 이번 행사 이름이 '긴 아리랑'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혼자 살아남은 그는 몸을 한국을 향해 뉘인 채 숨진 조선인들을 바라보며 영혼에 약속했다. '당신들의 유골을 기어코 조국으로 보내드리겠다'고 말이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나섰지만 미군에게 저지 당했고 스님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말에 곧장 머리를 깎았다.
일본 곳곳 사찰에 흩어져있는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한국으로 보내기로 마음 먹은 그는 2014년 92세의 나이로 숨지기 직전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봉환 사업을 추진했다.
자신의 유골을 '평화의 섬' 제주에 묻어달라고 했던 그는 "일본에서 돌아오는 한국인 전우들의 영혼과 함께 잠들고 싶다. 전우들의 한 맺힌 영혼들을 제주로 꼭 모셔와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결실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마침내 이뤄졌다. 특히 세계 평화의 섬이자 4·3의 아픔을 화해와 상생으로 극복한 제주에 유해를 안치하게 돼 의미를 더했다. 후지키 스님의 유골도 유언에 따라 선운정사에 안치돼있다.
이날 안치식에서도 국가를 넘은 후지키 쇼겐 스님의 인류애를 기리는 발언이 이어졌다.
장정언 일제 강점기 희생자 유골 제주봉안 위원회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후지키 쇼겐 스님을 '일본의 양심'이라 칭하며 그가 2013년 조선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진심으로 미안하다.친구로서 전우로서가 아닌 일본인으로서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참회의 글을 남겼다고 소개했다.
김홍걸 민화협 상임대표의장은 "후지키 쇼겐 스님이 '전우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한맺힌 영혼들을 제주로 꼭 모셔달라'고 했던 유언처럼 이곳에 안치됐다"며 "이곳에서 과거사를 청산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세상에 뻗어나갈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가 희생자들의 집이되고 아리랑이 남북통일, 한일간 평화와 우정 관계가 안착되는 그날까지 오래 오래 울려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