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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실제 주인공의 친손자가 살아온 역경..'씁쓸'

"중학교 다니다가 학교에서도 쫓겨났으니 사는 게…"

2019.03.01 07:01
영화 '암살'의 실제 주인공의 친손자가 살아온 역경..'씁쓸'
독립운동가 류자명 선생 손자인 류인호씨. © News1 김용빈 기자
영화 '암살'의 실제 주인공의 친손자가 살아온 역경..'씁쓸'
독립운동가 류자명 선생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독립기념관 홈페이지 자료).© 뉴스1 엄기찬 기자
의열단 류자명 선생 손자 류인호씨 '빨갱이 자손' 낙인
배움도 짧고 넉넉지 않은 살림까지 매순간 역경의 연속

(청주=뉴스1) 엄기찬 기자 = "독립운동가 자손이건 누구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을 테지 뭐 들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소."

충북 충주시 칠금동 항일독립운동역사관에서 만난 류인호(83)씨는 대뜸 첫인사를 이렇게 건넸다.

그는 의열단 핵심 참모로 영화 '암살'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독립운동가 우근 류자명(1894~1985년) 선생의 친손자다.

류자명 선생은 충북 충주 사람이다. 본명은 류흥식이다. 하지만 별명인 '류자명'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충주농업고등학교의 전신인 충주간이농업학교 교사였던 선생은 3·1운동 때 학생 중심의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했다.

하지만 일본 경찰에 비밀이 발각되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중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이것이 고국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됐다. 죽어서야 아니 죽어서도 백골이 돼서야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길이었다.

"해방이 되고 할아버지께서 귀국하시려고 했는데 귀국선을 타시기로 한 날 하필 6·25가 터져서 오시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실 때까지 고국산천 한 번 보실 수 없었어."

류인호씨는 자주는 아니지만, 할머니가 이따금 해 주시는 얘기로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떠신 분이며,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손자였지만, 어려서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아나키스트이기도 했던 그의 할아버지를 '빨갱이'로 보는 잘못된 시선 때문이었다.

중국으로 망명한 류자명 선생은 무장 항일 투쟁에 뜻을 두고 1922년 '김원봉 의열단'에 가입해 단재 신채호(1880~1936년) 선생 등과 함께 아나키스트 노선에서 활동했다.

선생은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1923) 작성에 사상적 영향을 줄 만큼 아나키즘 이론에 밝았고, 탁월한 어학 실력과 국제적인 감각으로 독립운동 조직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 학무부 차장을 지내기도 했던 선생은 해방 이전까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계의 일급 참모였다.

뒤늦게 선생의 이런 활동이 알려져 1991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또 북한에서도 1978년 3급 국기훈장을 수여받아 남북에서 공훈을 동시에 인정받은 독립운동가가 됐다.

그러나 북한에서 받은 3급 국기훈장 때문에 류인호씨를 비롯한 류자명 선생의 후손은 굴곡진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아나키스트를 '빨갱이'로 보는 삐딱한 시선에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았다고 하니 선생의 후손을 '공산당 자식' 또는 '빨갱이 자손'으로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다.

"뭐 좀 해보려고 하면 신원조회를 한다고 들볶으니 뭔들 할 수 있었겠어. 사친회비 못 냈다고 중학교 다니다가 학교에서도 쫓겨났으니 사는 게…"

설움이 복받쳤는지 말을 잇지 못한 류인호씨는 여러 독립운동가 후손처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 삶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그를 버티게 하고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게 힘이 됐던 것이 독립운동가 손자라는 자긍심이었다.

나무를 해다 팔며 어머니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류인호씨는 뒤늦게 중장비 기사로 공무원이 돼 스스로 역경을 개척했다.

정년을 마치고 현재는 항일운동기념사업회 활동을 하며 강원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병활동과 독립운동 이야기를 알려주고 있다.


류인호씨는 "내가 잘못하면 할아버지 망신이란 생각으로 '곧게 살자'는 마음을 늘 품고 살았다"며 "그게 나에겐 힘든 삶을 버티는 힘이었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중국에서 원예학자로 3000명의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던 류인호씨의 할아버지 류자명 선생은 1985년 4월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참여정부 때인 2002년 3월 국립대전현충원에 유골이 안장되면서 고국의 품에 잠들 수 있게 돼 생전의 한(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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