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직장인 최보인씨(35·가명)는 주말 내내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했다. 지난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소식에 LG그룹주와 두산로보틱스, 네이버 등 이른바 '엔비디아 동맹주'를 대거 매수했기 때문이다.
황 CEO가 언급한 종목들은 그의 방한 소식과 함께 상한가 랠리를 펼쳤다. 최씨도 다급하게 매수에 들어갔다. 고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황 CEO의 방한이 해당 종목들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 지금보다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나 최씨가 매수한 그 순간부터 주가는 갑자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황 CEO 방한 당일까지도 시퍼렇게 멍이 든 계좌를 바라보던 최씨는 '손절'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황 CEO 방한 호재는 이미 전고가에 모두 반영된 게 아니냐는 회의적인 분석에 마음이 흔들렸다. '삼쏘 회동'은 물론, 시구 등 황 CEO의 본격적인 행보가 하필 주말에 이뤄진다는 점도 불안했다. 그러나 황 CEO 입국과 함께 조금씩 반등 기미를 보이는 주가 그래프를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주말에 갇혀 버렸다는 얘기다.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이번에도 공식대로였다
이번 주 국내 증시는 젠슨 황이라는 이름 하나에 움직였다. 네이버는 GTC 타이베이 기조연설에서 협력이 공개된 뒤 소버린 AI·피지컬 AI 분야 전략적 파트너로 거론되며 급등했고, LG전자는 엔비디아의 'Isaac GR00T' 기반 피지컬 AI 모델 개발 소식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두산로보틱스를 비롯한 로봇주들도 황 CEO의 "엔비디아도 한국 로보틱스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는 발언 한 마디에 연일 급등했다.
하지만 이후 하락세가 시작됐고, 황 CEO가 실제로 한국 땅을 밟은 5일 주식시장은 냉랭히 얼어붙었다. 이날 두산로보틱스는 전일 대비 1만7600원(11.15%) 급락했고 네이버는 4.49%, LG전자는 7.62% 하락한 채 장을 마감했다.
이에 대해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말 이후 국내 증시에 유행했던 테마인 젠슨 황 방한 이벤트도 재료 소진 단계에 들어갔다"고 짚었다. 설상가상으로 브로드컴 실적 발표에서 시작된 미국 반도체주 약세까지 겹치며 낙폭이 더 커졌다.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라는 월가의 오래된 격언이 이번에도 교과서처럼 재현된 셈이다. 황 CEO의 방한과 관련한 '소문' 단계에서 올라탄 사람들은 수익을 챙겼다. 그러나 황 CEO의 방한 일정이 확정되고 공식적으로 보도된 '뉴스' 단계에 올라탄 사람들은 차익실현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손절을 가로막은 두 가지 심리
낙폭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도 손절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처분 효과'와 '낙관 편향'의 두 가지 심리를 들 수 있다. 주식 커뮤니티 등에서 자조적으로 쓰이는 "팔지 않으면 손해가 아니다"라는 말이 처분 효과를 잘 드러낸다. '지금 팔면 손실이 확정된다'는 두려움이 발동하면서, 손실을 확정 짓는 고통이 손실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이성적 판단보다 강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낙관 편향'은 일종의 기대감이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종목에 불리한 악재보다 내 판단을 지지해 줄 생생하고 자극적인 호재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최씨에게는 '삼쏘 회동'이 바로 그 호재였다. 황 CEO는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서 열린 '삼쏘 회동'에서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겹살 소맥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느냐에 따라, 월요일(8일) 장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이 처분 효과와 맞물리면서 '버티기'에 들어가게 만든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말, 월요일만 기다린다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주말이 끼어있다는 점은 최씨와 같은 개인 투자자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더욱 자극하는 요소였다. 장이 열려 있다면 주가가 추가로 폭락하든 반등하든 매수·매도를 통해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지만, 국장이 문을 닫은 주말에는 어떠한 행동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주말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황 CEO의 방한 동선과 삼쏘 회동에서 오간 발언의 행간을 분석하는 뉴스에 실시간으로 노출됐다. 이들이 초조함과 불안감이 불러온 일종의 심리적 감금 상태에서 탈출하는 8일, 국내 증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껄무새'가 되기 싫은데 오늘도 결국 "살 걸, 팔 걸, 버틸 걸…" 주식도, 부동산도, 재테크도 다들 나 빼고 잘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어려운 투자의 세계, 손뼉 치며 공감할 [개미의 세계]를 편하게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함께 공유하고 싶은 투자 사연이 있는 개미들의 제보도 기다립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