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저혈당 쇼크에 수제비?' 드라마 속 그 장면이 부른 논란 보니

2025.09.29 06:00  

[파이낸셜뉴스] "지금 진명대군이 보이는 증상은 저혈당 쇼크. 한 마디로 영양실조다. 섭취하기 쉬운 고농축 보양식을 만들어야 돼."

지난 21일 방영된 tvN 드라마 '폭군의셰프'의 '조선식 레스토랑(보양식)'편의 한 장면이다. 여자 주인공이 '저혈당 쇼크'에 대한 응급조치를 취하겠다며 고농축 보양식을 만들었다.

28일 종영한 이 드라마는 과거로 타임슬립한 셰프가 최악의 폭군이자 절대 미각을 가진 왕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서바이벌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은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을 하면서 음식을 만들 때 건강과 질병을 함께 얘기했다. 그러나 저혈당 쇼크와 보양식을 연결한 '조선식 레스토랑' 이야기는 당뇨병 환자들이 다소 이해되기 어려웠다.

23년간 1형 당뇨 투병 중인 김은주씨(가명·35)는 "드라마 팬이라 매회 챙겨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는 장면이 나왔다"며 "현실에선 왜곡된 정보 때문에 더 위급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무슨 내용인데

문제의 장면은 드라마 속 어린 대군이 독성이 있는 음식을 먹고 쓰러진 뒤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 데서 나온다. 독의 성질을 확인한 뒤 해독제를 먹이고 회복되는 듯 보이던 어린 대군은 잠시 후 먹은 약을 토하고 다시 의식을 잃은 뒤 경련을 일으킨다.

셰프인 여자 주인공은 왕실 주치의인 어의를 통해 어린 대군의 상태를 확인하고 '저혈당'이라 판단한다. 그리고 기력을 회복하는데 '보양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수라간으로 향한다.

주인공이 만든 보양식은 우족탕 국물에 감초, 당귀, 천궁, 녹용 등을 우려낸 벨루체 소스에 백미로 만든 조랭이떡, 밀가루 반죽을 넣어 만든 걸쭉한 형태의 수제비다.

음식을 가져온 주인공은 "쌀로 만든 떡과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는 혈당 지수가 높아서 보통 사람에게는 살이 찌는 음식이지만, 지금 기력이 떨어진 대군께는 가장 적당한 음식"이라며 "육수는 기혈을 보충해 주는 우족과 녹용, 천궁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이어 음식을 먹은 어린 대군은 경련을 멈추고 금새 회복한다.

드라마 흐름상 요리사인 주인공을 부각시키고 이야기를 끌어가려면 걸쭉한 수제비라는 요리를 이용하는 게 맞지만, 실상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저혈당도 단계가 있다

'호르몬 명의'로 잘 알려진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혈당 수치에 따라 저혈당을 분류했다.

안 교수는 "혈당이 정상 범위(70~100㎎/dL) 아래로 떨어지면 나타나는 게 저혈당이다. 50~70이면 경미한 수준이지만, 50이하로 떨어지면 어지럼증, 손떨림, 두통에 식은땀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 의식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특히 20이하가 되면 말 그대로 쇼크인데 의식을 잃는 건 물론이고 뇌에도 손상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이 떨어졌을 때 당장 취할 수 있는 응급조치 방법도 알려줬다.

안 교수는 "저혈당이 왔을 때 15g의 당질을 먹고 15분 정도 지켜본 뒤 상태에 따라 추가로 더 먹도록 해야 한다"며 "각설탕 한 개가 4, 5g이니 15g을 먹으려면 3, 4개 정도 먹어야 한다. 주스도 좋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속 장면의 위험도 알렸다.

안 교수는 "저혈당일 땐 초콜릿보다는 사탕, 사탕보다는 오렌지주스가 좋다"면서 "의식이 희미한 경우엔 기도가 막힐 수 있으니 단당류로 응급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당이나 정제된 탄수화물로 완벽하게 회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그때는 드라마 속 여 주인공이 만든 수제비처럼 식사를 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혈당 스파이크로 인한 저혈당도 부연했다. 혈당 스파이크는 식사 후 혈당이 급격히 치솟았다가 다시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안 교수는 "상대적 저혈당이 올 수 있다"면서 "혈당이 치솟았다가 떨어지면서 정상 혈당인 100㎎/dL일 때도 저혈당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

드라마 내용에 당뇨 환자들이 정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저혈당 쇼크로 쓰러진 사람을 시민이나 경찰이 신속한 응급조치로 생명을 구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서귀포경찰서는 중동지구대장 신창일 경정과 강영익 경사, 김나현 순경이 지난 22일 오후 6시30분께 순찰차를 타고 서귀포시 서귀동 중앙로터리를 지나던 중 저혈당 쇼크로 쓰러져 있는 70대 A씨를 구조한 사실을 알렸다.

당시 A씨는 의식이 희미하고 눈동자가 흐려진 데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신 경정은 고령층에서 간간히 발생하는 저혈당 쇼크 증세인 것을 알아차렸고 119에 신고한 뒤 사탕을 먹이고 인근 식당에서 물을 구해와 제공했다.

A씨는 이내 의식을 회복했고 출동한 구급대에 의해 현장 응급처치를 받았다.


비슷한 뉴스는 지난 8월에도 있었다. 저혈당 쇼크로 건물 앞에 쓰러진 50대 남성, 시내버스 안에서 의식을 잃은 80대 노인을 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같은 뉴스는 매월 최소 한 건씩 나왔다.


초등학생 자녀가 1형 당뇨 환자라는 40대 주부 한모씨는 "아이의 연속혈당기를 나도 공유해서 볼 수 있다. 고혈당보다 더 위험한 게 저혈당이라는 말이 있다"며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모르기 때문에 저혈당 알람이 뜨지 않을까 늘 걱정한다"고 토로했다.

김씨도 "회사에서 일하다가 저혈당으로 쓰러져 119에 실려간 적이 있다"면서 "의식을 완전히 잃을 정도라 당시 포도당 등 수액을 10시간 넘게 맞아야 했다"고 전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