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달불능점을 결국 음악을 통해 감촉하는 일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임을 결국 실천했죠.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단순히 거액의 결과값이 아니라 그 과정에 도달하기까지 견뎌온 묵묵함입니다.
슈가가 세브란스병원에 '50억원 기부' 의사를 밝힌 과정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그는 작년에 슈퍼스타라는 이유로 실수에 비해 과도하게 비판, 아니 일부 맹목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 슈가는 하지만 지난 21일 소집해제가 될 때까지 묵묵히 맡은 소임을 다했고, 당일 과거의 실수에 대해 또 사과했습니다.
각종 오해, 편견 속에서 둘러싸여 있던 슈가는 그 가운데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본연에 집중했습니다. 본업인 음악과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정신건강의 영역을 아울러 사회적 책임의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조용히 준비했습니다. 구심력으로 원심력까지 아우른 거죠.
슈가는 50억원을 기부하면서, 특히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의 치료와 사회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전문 치료센터(민윤기 치료센터) 설립에 힘 쓰기로 했습니다.
자폐 아동의 사회성 훈련은 현재까지 음악치료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가장 뚜렷하게 입증된 분야 중 하나입니다. 이번 협업은 슈가가 가진 관심과 역량이 실질적으로 접목될 수 있는 지점에서 출발한 셈이죠.
슈가는 지난해 말부터 소아정신과 분야 권위자인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천근아 교수와 소통하고, 올 3월부터 이달까지 주말을 활용해 실제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을 만나며 '마인드(MIND)' 개발해 참여했습니다. '마인드'는 기존 사회성 훈련 프로그램에 음악적 콘텐츠를 접목한 사회성 집단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음악에 맞춰 글을 짓고, 음악과 글을 통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합니다.
발달장애와 정신건강은 정신의학적 분류 체계 안에서 모두 정신건강의 영역에 포함되는 주제입니다. 슈가는 일찌감치 심리적인 것과 정신건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들은 다 알겠지만, 지난 2020년 슈가는 방탄소년단의 자체 라디오 콘텐츠인 '꿀 FM 06.13' DJ로 나섰을 당시 심리학, 철학 그리고 정신과 뇌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면서 심리 상담 자격증을 따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죠. 자신과 같은 친구들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슈가의 솔로 앨범 '디-데이(D-DAY)'(2023)에 실린 '스누즈(Snooze)'는 그에 대한 일종의 답이죠. 일본 거장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연주가 녹아 있고, 국내 브리시티 록 밴드 '더 로즈(The Rose)'의 보컬 김우성이 목소리를 보태기도 한 이 곡은 후배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제목처럼 '쪽잠'을 자고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죠.
슈가는 사카모토와 만났을 당시 작업 중이던 이 곡을 들려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쪽잠을 자도 괜찮아질 테니까 추락이 두렵다면 내가 다 받아줄게'라는 가사를 담았어요. 이 일을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가끔씩 저를 보고 저희 팀을 보고 '꿈을 꿨어요' '형 음악 듣고 음악을 시작했어요'라고 말해주는 후배들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예요."
'디-데이'처럼 자신의 또 다른 음악 정체성인 '어거스트 디(Agust D)'를 내세운 음악들이 보기죠. 해당 활동명은 예전에 슈가가 가사에 썼던 'DT 슈가(Suga)'를 거꾸로 배열한 겁니다. DT는 슈가의 고향인 대구, 즉 디 타운(D Town)을 가리키죠.
어거스트 디의 음악은 자기 내면에 골몰할 수 있어 '자기 고백적'이죠. 일곱 명이 함께 하는 방탄소년단 멤버로서 드러내지 못한 고뇌를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어거스트 디(Agust D)'(2016), '디-투(D-2)'(2020), '디-데이' 등 '어거스트 디 트릴로지는 슈가·어거스트 디·민윤기, 삼자대면의 완벽한 3부작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특히 '디-데이'에 실린 '아미그달라(AMYGDALA)'가 슈가의 관심을 반영하는 대표곡입니다. 곡 제목은 아몬드 크기의 편도체(AMYGDALA)를 뜻합니다. 편도체는 감정·걱정·불안 등을 처리하는 뇌 부위죠.
곡엔 "엄마 심장의 수술 / 귓가엔 엄마 심장 시계 소리" "전하지 못했던 내 사고 소식" "아버지의 간암 소식" 등 슈가가 직접 털어놓지 못했던 아픔이 가사로 녹아들어갔습니다. 슈가는 편도체 이상으로 감정 표현불능증을 가지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작가 손원평의 '아몬드'를 감명 깊게 읽기도 했습니다. '아미그달라'와 주제가 같다고 말하기도 했죠.
여기에 어린 시절 발달장애를 가진 지인과 경험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이 있게 넓혀가게 된 슈가는 이와 관련 치료센터를 만드는 데까지 이릅니다.
좋아하는 일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한 때 고백했던 슈가는 이렇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왜 음악을 듣는가'에 대한 답 하나를 이렇게 내놓았습니다.
슈가의 선한영향력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것도 아미의 일이죠. 전날 오전 슈가의 기부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 만에 민윤기 치료센터 일반인 기부금이 2억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아미 역시 슈가와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삶은 저항과 복종 사이의 싸움이라는데 / 내가 보기에는 외로움들과의 싸움이네 / 눈물이 터져 나오면 그대 울어도 돼 (울어도 돼) / 당신은 사랑받기에도 이미 충분한데"(슈가 '사람 Pt.2(feat. 아이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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