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다리를 놓는 사람이잖아요, 저도 그런 역할을 다하는 배우이고 싶어요."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K엄마' 'K할머니' 수식어에 이어 이번에는 누구보다 따스하고 듬직한 '충수이모'로 사랑받은 배우 차미경을 만났다.
차미경은 지난달 막을 내린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연출 김원석)의 애순(아이유 분)과 관식(박보검 분)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세 이모 중 충수를 연기했다. 차미경은 극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충수의 배경과 삶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충수라는 인물 너머에 자리 잡은 제주를, 풍파 속에서 일구어 온 모진 삶을 기억했다. 그랬기에 충수 이모는 강인하게, 때로는 따스하게 애순과 해녀들을 지킬 수 있었다.
부산 연극 무대에서 연기에 푹 뼈져 살았던 차미경은 '낯설었던' 서울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드라마와 영화로 다작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 가장 바쁜 배우로 꼽힌다. 드라마 '수사반장 1958' '굿파트너' '폭싹 속았수다'에 이어 '미지의 서울' '키스는 괜히 해서'까지 차기작이 줄줄이 확정됐다.
60세. 차미경은 지금까지의 활동이 '워밍업'이었다고 했다. 앞으로 배우로서의 활동, 자신의 인생이 더욱 기대된다고 했다. 차미경과 나눈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이야기다.
-'폭싹 속았수다'를 잘 보내줬나.
▶여운이 가실 수 없는 게 지금도 '폭싹'의 여운이 뜨겁다. 잊고 있던 게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고 시간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는 것 같다. 주변에서 세 번씩 봤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다들 깊게 느끼더라. 그런 반응을 들으면 제가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느끼고 작품에 대한 마음도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충수 이모로서 어떤 이야기에 이입해서 연기했나.
▶극에서 제주의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적 배경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충수는 보이지 않아도 제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해녀여도 피난 온) 광례와는 다른 느낌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정을 표현하는 것도 무심하지만 다른 느낌이다. 애순이를 챙기는 것도 이웃으로서, 해녀로서 의리를 넘어선 것이 아닐지 생각했다. 충수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어쩌면 (충수도) 부모를 잃거나 물질을 하게 된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임했다. '숨병이 나서 죽고, 바다 나가서 죽고' (대사를 말할 때) 더 초연한 거다. 어떤 때는 추상같이 말하고 어떤 때는 따뜻하게 말하기도 하고. 삶의 파노라마를 겪은 사람이 애순이에게 해주는 말들이다.
-제주도 사투리로 연기했는데.
▶사투리에는 정서를 붙여서 연기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도 사투리 잘했다고, 제주도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해주셔서 너무 기쁘다.(웃음) 이번에 (고향인) 부산 이야기도 나왔는데 김영웅, 강말금 배우 잘하는 건 알고 있었고 다들 참 잘하더라. 부산 지역에서 연극을 해서 연극을 하면서 만난 배우들을 작품에서 만나면 참 감회가 새롭고 뿌듯하고 기쁘다.
-충수이모의 대사가 애순이는 물론 시청자들에게 깊이 새겨지는 말들이었다. 기억에 남는 대사는.
▶'단단한 조선무에도 바람 든다, 쉬운 자식 어려운 자식 따로 두지 말라'는 대사다. 나도 아들이 둘인데 자식을 키우는 게 쉽지 않다. 마음은 똑같은데,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될 때가 있다. 그 대사를 보고 반성도 했다.
-'그들은 기어코 나를 또 키웠다, 내가 세상에서 100g도 사라지지 않게 했다'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더라.
▶나 역시 공감했다. 내 부모도 나를 기어코 키웠다. 금명이가 상처를 받고 왔을 때 밥을 해먹이는 장면을 보고 울었다. 처음 연극을 하다가 영화, 드라마를 하면서 서울을 오가게 됐다. 잘 모르는 현장이니까 적응이 쉽지 않더라. 세트장 안에 다 같이 있는데도 (다른 배우들은) 모여서 간식 먹고 그러더라. 그 옆에 있는 나는 참 기분이 이상했다. 당시 나도 엄마였고 다 큰 딸이었는데도, 서울에 갔다가 부산에 오면 그렇게 서럽더라. 밤에 부산 본가에 와서 문을 열면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완두콩 넣은 밥에 찌개를 먹고는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엄마 밥을 맛있게 먹을 걸' 그 생각이 나더라. 나도 자식을 키워보니,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이 먹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
-다들 충수 이모에게 조언을 구하듯이 현장에서 선생님의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전체를 아우르는 그런 느낌이다. 오락 담당?(웃음) 이 드라마는 호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아무래도 지칠 수 있으니까. 분장 버스에 오를 때부터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한다. 분장하는 순간에 해녀가 되는 것 같다. 현장에 자리 펴고 밥해 먹고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지냈다. 세 명이 너무 잘 지냈다. 애순이와 관식이를 지키는 요정들처럼.(웃음)
-금명이의 시대를 보면서 어떤 점이 공감됐나.
▶제가 살아온 시절과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 대학에 다니는 모습도 나와 비슷하더라. 금명이와 거의 비슷한 사회적 분위기를 겪으면서 살았다. 그런 점에서 공감이 됐다.
-당시 일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의 모습이 나오기도 하는데.
▶내 주변도 거의 스물다섯, 여섯에는 결혼을 많이 했다. 나는 연극에 빠져 있었다. 그 시절에는 여성이 (결혼하고) 사회에 나오는 일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체감상 20~30% 정도. 저는 연기에 빠져서 다른 걸 생각할 게 없었다. 책 읽고 글 쓰고 그게 너무 좋았다. 비교적 늦게 한 편이다.
-60세, 지금은 어떤 나이인가.
▶내 삶의 워밍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더 잘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는 것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작품을 빛나게 하고 싶고, 나를 위해서 더 잘 살고 싶다. 충수를 보면서 나를 봤다. 나와도 닮은 점이 있었다. 또 극에서 애순이가 시를 쓰는 장면이 특히 좋았다. 자기 꿈을 이루는 모습이기도 한데, 내가 문예창작과를 나왔는데 글을 많이 쓰지 못했다. 저도 잊고 있던 꿈을 다시 마주한 것 같더라. 더 시를 쓰고 싶어졌다. '나무'에 대한 글도 쓰고 싶다.
-책을 쓴다면 제목은 무엇이라고 하고 싶나.
▶꼰대는 없다?(웃음) 우리(배우)는 벽을 깨는 일을 하고, 세대 간에 다리를 놓는 일을 한다. 세대 간의 경계를 깨야 한다. 60대 나이의 벽을 깨고 더 깊이 소통하는 배우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