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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훼손했다…웨이브의 괜한 추억 소환

2024.11.28 16:15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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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안타깝게도 리마스터링 버전에서 오히려 완성도가 하락했다. OTT 플랫폼 웨이브가 지난 22일 뉴클래식 프로젝트로 '[감독판] 미안하다 사랑한다 2024'를 6부작으로 공개했다. 뉴클래식 프로젝트는 2000년대 드라마를 2024 버전으로 신작화, 보다 선명해진 4K 화질로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지난 9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으로 공개한 바 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머리에 총알이 박혀 시한부를 선고받은 호주 입양아 차무혁(소지섭 분)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송은채(임수정 분)를 만나 죽음도 두렵지 않은 지독한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지난 2004년 연말 방영 당시 '미사 폐인'을 양산하며 인기를 끌었고 마지막 회인 16회가 수도권 기준 28.6%, 비수도권 기준 29.2%의 자체최고시청률을 달성했다.

2024년 버전의 가장 큰 변화는 속도감을 위해 16부작이 6부작으로 대폭 축소된 점이다. 드라마의 주요 골격이 되는 차무혁과 송은채의 감정선을 이어가는 멜로라인에 집중한 반면, 당시 분량을 늘리기 위해 반복됐던 신은 대부분 편집됐다. 삼각 멜로의 한축을 담당했던 최윤(정경호 분)의 신도 다수 날렸다. 이형민 감독은 과거 드라마 촬영이 생방송으로 진행됐던 만큼, 당시 편집이 정교하지 못했다고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20204년 버전이 더 빈틈이 많다.

호흡이 빨라진 만큼 2024년 버전은 2004년의 요약 버전에 가깝다. 화질이 개선된 유튜브 요약본을 보는 듯하다. 10부에 가까운 분량을 들어내다 보니 차무혁의 시선에서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흐름이 대개 뚝뚝 끊어진다. 호주 로케이션으로 촬영됐던 1부는 뮤직비디오 장면을 이어놓은 듯 어색하고 이질적이다. 차무혁이란 캐릭터가 거친 남성 캐릭터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공감하기 어려울 만큼, 몰입에 방해가 되는 수준으로 편집됐다. "차무혁은 늘 화나 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물론, 각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으면서 깔린 음악도 장면과 동떨어진 느낌마저 준다.

당시 정서와 감수성으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용인됐지만, 현재 시청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캐릭터와 장면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점은 리마스터링의 명분을 다소 퇴색시킨다. "영역 표시"라며 차무혁이 송은채가 사는 최윤의 집 앞에 노상방뇨를 하는 경악스러운 장면이나, 시종일관 송은채에 윽박지르거나 고백 공격을 서슴지 않는 차무혁과 철없는 막무가내 최윤 두 남성의 모습 등은 그대로 담겼다. 돈 많은 부자와 결혼하겠다는 전 여자친구에게 같이 죽자고 협박하거나 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송은채를 방관하는가 하면, 일곱 살 지능을 가진 엄마 윤서경(전혜진 분)을 원망하는 김갈치(박건태 분)를 냅다 때리는 차무혁의 장면 다수도 여전히 불편하다.

리마스터링의 경우 화질과 음질 등 스케일업 측면에서 시청자들에게는 고무적인 콘텐츠다. 다만 재촬영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트렌드에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최선의 재구성과 조합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에서의 감독판의 경우 미공개였던 새로운 시퀀스와 드라마를 선보이는 등 원작보다 분량을 추가해 기존 팬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충족시키는 측면에서 각광받았다. 또한 감독 의도를 더 살리기 위한 편집이 선행되며 보다 정교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준다. 반면 웨이브가 선보이는 2024년의 버전은 단순 축약본이라는 점에서 원작의 감동과 매력이 반감됐기에 기존 팬들을 만족시키기보다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청자들을 손쉽게 유입시키기 위한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사료된다. 많은 장면을 축약하고 속도감을 낸 선택이 원작보다 매력적일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형민 감독은 지난 27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차무혁 캐릭터가 요즘 시청자들에게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거친 남성상이라는 말에 "트렌드가 바뀌니까 어쩔 수는 없다"며 "설정상 총을 맞았고 머리를 다쳤기 때문에 약간 더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캐릭터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24년 버전에서도 차무혁은 머리에 총을 맞기 전부터 여자친구에게 윽박지르고 위력을 써서 자기 뜻대로 하려는 캐릭터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이형민 감독은 2004년 당시에도 차무혁 캐릭터가 일반적인 남자 주인공 캐릭터가 아니었다며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호주에 입양됐다가 버려진 아이가 엄마한테 복수하러 왔다는 설정을 갖고 가는데 거친 얘기가 나올 것 같고 이런 드라마가 잘 될까 하는 걱정은 있었다, 그 당시에도 트렌드하고는 그렇게 잘 붙어 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웨이브는 향후 라인업으로 '겨울연가' '꽃보다 남자' '쾌걸춘향' 등 작품을 공개한다. 기술 발전에 따른 시청 환경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단순 스케일업을 넘어 재편집은 '완성도'를 보완하는 데 목적을 둬야 원작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 리메이크가 아닌 이상 애초부터 트렌드에 맞춘 편집이란 불가능한 만큼, 이번 재편집은 리마스터링 명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구색에 가깝다.
이번 리마스터링도 트렌드에 맞춘 건 속도감 뿐, 차라리 장면 템포를 조절하는 게 나은 선택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완성도가 결여된 편집은 기존 팬들도 외면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청자들에게도 오히려 과거 콘텐츠에 대한 불호 반응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리스크다. 뉴클래식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기획으로 추억마저 훼손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원작을 변형하는 리마스터링은 보다 깊이 있는 고찰이 동반된 작업이 될 필요가 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