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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세상 먼지 쓸고 도파민 안겼다…'돌풍'서 빛난 저력

2024.07.06 08:00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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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 드라마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상의 먼지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청와대에 남아야겠습니다."


'돌풍'의 목적지는 분명하다. 주인공 박동호(설경구 분)와 함께 부패 척결의 과업을 달성하는 것.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기꺼이 악행을 서슴지 않으며 목표만을 향해 간다. 선을 넘는 악행이 계속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청자들은 박동호에 이입된다. 그 중심에는 박동호가 몰고 온 '돌풍'을 설득하는 설경구가 있다.

지난 6월 28일 12회 전편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사이의 대결을 그린 드라마다. '펀치' '황금의 제국' '추적자 THE CHASER'로 권력 3부작을 선보였던 박경수 작가의 7년 만의 신작이다. 연출은 드라마 '방법'과 영화 '방법: 재차의'의 김용완 감독이 맡았다.

'돌풍'은 시작부터 '대통령 시해'라는 극적인 이야기로 시작된다. 국무총리 박동호는 초심을 잃고 비리에 젖어간 대통령 장일준(김홍파 분)에게 하야를 요구했다가 되레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자, 대통령 시해를 실행에 옮기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권한대행이 되고 차기 대통령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경제 부총리 정수진(김희애 분)과 권력 쟁탈전을 벌인다.

운동권 출신으로 장일준 밑에서 한때 박동호와 동지였던 정수진은 사모펀드 대표인 남편 한민호(이해영 분)가 대진그룹 부회장(김영민 분)으로부터 투자를 받게 된 것을 계기로 뗄 수 없는 유착 관계에 빠진다. 이후 박동호가 대통령을 시해하면서까지 자신을 제거하려 폭주하자, 그 역시도 이에 맞서 권력 전쟁을 벌이기에 이른다.

'돌풍' 속 정치판은 제목 그 자체다. 대통령 시해를 시작으로 부패 척결이란 목표까지, 밀도 높은 서사 속 박동호와 정수진의 치열한 공수 교대가 이뤄진다. 박동호가 앞서 가면 정수진이 반격하고, 박동호가 다시 판을 뒤집었다 정수진이 또 한 번 더 치명상을 입히는, 승패 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영원한 아군이 없는 살벌한 정치판에서 수를 읽고 거침없이 다음 계획을 설계해 가는, 예측 불가의 전개가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안긴다.

박동호는 앞만 보고 돌진하는 모습으로 통쾌함을 안기는 캐릭터이지만,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치명적인 결함과 함께 출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타인의 치부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목적 달성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상황들은 권력으로 넘어서려 하는 등 결코 정의롭다고 볼 수 없는 캐릭터임에도 시청자들은 박동호를 지지하게 된다.

박경수 작가는 실존 인물들을 연상시킬 만한 요소들을 곳곳에 설정해 뒀다. 특정 인물이 아닌, 다수 인물들이 혼재돼 있어 더욱 몰입하게 된다. 작가의 의도와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탁월하게 살린 이는 다름 아닌 설경구다. 설경구는 지난 1994년 방송된 MBC 드라마 '큰 언니'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드라마를 선보였다. 영화와 달리 방대한 대사량과 촬영 분량에 대한 차이점을 느꼈다는 그였지만, 매 장면 시청자들을 이입시킨 열연은 설경구의 진가를 새삼 실감하게 했다.

극의 흐름을 주도하며 과감한 결단력과 실행력을 보여주는 정치인으로서의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매 장면 명대사급으로 쏟아지는 박경수식 대사의 멋도 살렸다. 힘주면 자칫 과할 수 있는 대사임에도 이질적이지 않은 대사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연기 내공이 드러났다. 11화의 "단 한 번도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 적이 없다"며 "나를 위해서 했지, 추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는 날 위해서"라는 솔직하면서도 적나라한 대사는 결국 정치에 관여하고 있는 이들, 이타적인 척하는 인간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여운을 남겼다.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야, 더 큰 거짓말"이라는 박동호의 대사처럼, '돌풍'에서는 박동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지른 악행들이 합리화되기도 했다. 박경수 작가는 그만큼 선한 진실이 이기기 어렵다는 현실을 새삼 일깨워줬다.
부패가 척결되는 판타지가 도파민을 자극하면서도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박경수 작가는 박동호의 악행을 눈감아서라도 이루고 싶은 모두의 바람이라는 점을 제대로 건드렸다. 시청자들의 이같은 공감대로 '돌풍'은 공개 이후 '오늘 대한민국의 톱 10 시리즈'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설경구가 몰고 온 '돌풍'의 호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더욱 주목된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