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아나:바다]는 드넓은 '프리의 대양'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아나운서들의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안정된 방송국의 품을 벗어나 '아나운서'에서 '방송인'으로 과감하게 변신한 이들은 요즘 어떤 즐거움과 고민 속에 살고 있을까요? [아나:바다]를 통해 이들을 직접 만나,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려 합니다.
(서울=뉴스1) 장아름 안은재 기자 = 방송인 겸 배우 오정연은 도전의 아이콘으로도 불린다. 방송과 연기, 본업 외에도 바이크와 스쿠버다이빙,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로 계속해 오고 있는 축구까지 선뜻 해내기 어려운 도전의 연속이다. 지난 4월부터는 'TTF(태백 트랙 페스티벌) R-lady 컵'을 통해 모터사이클 선수 데뷔전까지 치르고 있다. 오정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러주길 기다려선 안 된다"는 말로 프리랜서 방송인으로서 새로운 경험으로 자신을 채워가고자 했던, 그간의 남다른 노력을 짐작게 했다.
오정연은 지난 2006년 KBS 32기 아나운서로 입사한 후 KBS 간판으로 활약해 오다 2015년 퇴사 후 햇수로 프리 10년차 방송인이 됐다. KBS 재직 당시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력과 똑 부러지는 깔끔한 진행, 단아한 미모로 주목받던 아나운서로, 각종 예능 및 교양 프로그램에서 '열일' 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오정연은 "방송을 다양하게 하면서 역량이 강화됐었지만 뭐든 너무 열심히 다 소화하느라 탈이 났었다"며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정을 쏟았던 당시를 돌이켰다.
퇴사 후에는 예상 밖 새로운 도전으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워킹맘 육아대디'(2016)를 시작으로 '마인'(2021)과 '힘쎈여자 강남순'(2023) 등 드라마와 첫 영화 주연작인 '죽이러 간다'(2021) 그리고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2019) '리어왕'(2021) 등 연극까지 무대와 매체를 넘나들며 배우로서도 자리매김했다. 오정연은 이전과 전혀 다른 커리어에 도전하게 한 연기의 매력에 대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탐구하게 됐다"며 "새로운 내가 창조되는 진기한 경험이 흥미로웠다"고 털어놨다.
연기를 향한 열정 또한 그 누구 못지않다. 오정연은 "프리랜서를 해서 연기를 할 수 있었다"며 "연기를 만나 힘든 시기도 다 덮을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고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또 "배우로서 다채로운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고 아직 그런 에너지가 많다"며 "무슨 역할을 맡든 결코 허투루 임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는 말로 앞으로 배우로서 그가 만날 작품과 선보일 연기도 기대하게 했다.
오정연을 [아나:바다]의 여섯 번째 주인공으로 만났다.
<【아나:바다】 오정현 편①에 이어>
-프리랜서가 되면서 배우를 목표로 했었던 것인가.
▶배우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주변에서 (배우를 해보라고) 얘기해줄 땐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했었는데 KBS를 나오고 MBC에서 '워킹맘 육아대디'라는 작품을 하게 됐다. 당시 회사가 SM C&C였는데, 대표님께서 이런 제안이 왔는데 연기해 볼 생각이 있냐고 하셨다. 프리랜서로 나올 때 뭐든 도전하자는 생각으로 나왔기 때문에 일에 대한 욕구가 컸어서 연기를 할 수 있는지 테스트는 받아보고 싶다고 해서 대본 리딩을 처음 해봤었다. 공식적인 리딩이 아니었고 어떻게 하는지 보기 위한, 오디션을 겸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미리 숙지했던 대사를 주셔서 해봤는데 (감독님께서) 만족해하시는 눈빛으로 봐주시더니 결국 같이하자고 하셨다. 연기는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서른넷 정도 됐을 나이에 진짜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하게 돼서 행복했다. 당시 경험은 프리랜서를 해서 할 수 있었던 영역이었다. 회사에 있었다면 연기를 하고 싶어도 단발성에 그치거나 했을 텐데 프리랜서를 해서 연기를 만날 수 있었고 힘든 시기도 다 덮을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
-연기의 어떤 점에서 그렇게 크게 매력을 느꼈나.
▶'워킹맘 육아 대디'를 하면서 너무 새로운 세계였다. 아나운서와 배우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만 같고 완전히 다른 일이더라. 아나운서는 진행자로서 늘 중심을 지켜야 하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냉정해야 하는 직업인 반면 연기는 카메라 앞에서 나밖에 없는 것처럼 해야 하는, 내 감정에 푹 빠져야 하는 일이더라. 또 아나운서는 어떤 정보나 재미를 위해 사건이나 사실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전달하는 콘텐츠를 정말 잘 이해해서 전달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스튜디오에서 그 많은 콘텐츠들을 다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전달자의 역할로 MC나 스포츠 캐스터도 하고 운이 좋게 다양하게 경험해봤지만, 아나운서라는 직업 자체는 나라는 자아와 개성을 배제하고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주체가 돼야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서 연기를 하면서 오히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탐구하게 됐다. 나라는 사람에 캐릭터를 입혀야 하기 때문에 이에 앞서 나에 대한 공부가 수반돼야 하더라. 연기를 하면서는 내가 진짜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이런 사소한 것부터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기서 또 새로운 내가 창조되는 그런 진기한 경험을 하면서 그게 너무 흥미로웠다. 그러다 보니 삶 자체도 깊어진 느낌이 든다. 아나운서도 굉장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배우와는 그런 부분이 다른 것 같다.
-아나운서와 배우, 모두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지만 카메라를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적응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뚝딱거리기도 하고 어떻게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지 방향을 찾는 게 어려웠다. 오랜 세월 MC를 하다 보니 시야가 너무 넓어져서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보이더라. 눈치를 봤던 습관 때문에 처음 연기할 때는 카메라맨이 하품하는 것도 보였고, 내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저 스태프는 내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잡생각도 많이 들었다. 첫 드라마를 6개월 넘게 찍었는데 뒤로 갈수록 깊은 감정 연기 외에 일상적인 연기는 어느 정도 해낼 수 있는 스킬은 익혔지만, 그 이상을 가는 데 한계를 느껴서 연극을 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연극을 할 때는 주위가 어떻든 감정에 집중하고 그 역할을 해내는 과정을 많이 배울 수 있다더라. 그래서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를 소극장에서, '리어왕'을 대극장에서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에서 조금씩 나아졌고, 감정에 집중하는 방법을 익혔다. 이후에는 어느 매체에서 연기를 하든지 간에 연기를 더 탐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저예산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한달 가량 로케를 하면서 완전히 빠져들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많은 관객이 이 작품을 보시진 못했지만 완전 변신을 하게 됐던 작품이었다. 밑바닥 인생에서 힘들게 사는 킬러 역할을 맡으면서 메이크업도 거의 안 하고 캐릭터 그 자체로 있을 수 있었던 경험이 됐다. 한 달 동안은 일상에서 동떨어져서 오정연을 버리고 캐릭터로만 살아가니까 많은 경험이 쌓였다.
-'힘쎈여자 강남순'과 '마인' 등 화제작에도 출연했었다. 시청자들이 '배우로서의 오정연'을 어떻게 봐준 것 같나.
▶오히려 편해 보인다, 자연스럽다는 얘길 들었던 것 같다. 가끔 알고리즘으로 인해 '클래식 오디세이'서 진행했던 과거 방송 모습이 영상으로 뜨는데 답답하고 틀에 박혀 있는 것 같고 로봇 같기도 하더라.(웃음) 당시엔 또박또박 잘 외워서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송을 했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쉽게 습득할 수 있게 하는 데 최적화돼 있었다. 그 틀을 깨는 것도 오래 걸렸고, 지금도 깨려고 노력 중이다. 연기를 하고 나서는 여러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오히려 편해졌더라. 보기에도 더 자연스러워져서 이렇게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아나운서로서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해온 셈이다. 아나운서가 아닌 직장인 오정연으로서의 고충도 있었나.
▶회사 다닐 때는 그 안에서 무조건 말을 잘 들어야만 하는 줄 알고 지냈다. 회사에서 시키면 다 했었고, 정말 모범생처럼 회사 생활을 했던 것 같다.(웃음) 당시를 돌이켜보면 속으로는 '이건 저와 안 맞는 것 같다' '제가 시간이 없다' 하면서도, 누군가 연락이 와서 부탁하면 그걸 다 했었다. 그러다 보니까 다양하게 경험을 해보고 역량도 강화됐지만, 그걸 다 소화하느라 탈이 났었다. 아나운서들은 행정 생활에 소홀히 할 수도 있는데 조직 생활도, 방송도 죄다 열심히 하고 그걸 다 소화하느라 탈이 나더라. 돌이켜봐도 그 이상 성실하게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히 주입식 교육 세대는 그렇게 하는 게 잘하는 건 줄 안다. 누가 시킨 걸 최대한 잘 이뤄내려고 열심히 했지만, 창의적으로 해내진 못했던 것 같다. 생방송을 8년을 했는데 옷과 대본, 콘셉트 등 최종 점검자로서 수정을 할 뿐이지 처음부터 만들어가진 못했다. 가이드라인이 있으니 그것만 열심히 따라가면 되니까 거기에 익숙했던 거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 가장 컸던 변화는 어떤 점이었나.
▶프리랜서가 된 이후에는 자율성이 확 늘어나면서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스스로 정해야 하더라. 회사가 있긴 하지만 주는 결국 본인이고 그에 따른 결과는 온전히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정말 달랐다. 또 방송을 데일리로 하다 보니 루틴한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프리랜서로 나와서는 정말 불규칙적이고, 스케줄이 며칠씩 없는 날을 처음 접해보니까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 생기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나운서이자 직장인으로서의 삶과 현재의 삶 중 어떤 삶이 더 만족스럽나.
▶직장인일 때는 KBS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내 개성과 캐릭터를 드러내는 게 오히려 옳은 덕목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나:바다】 오정현 편③에 계속>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