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약초를 먹고, 씹어 으깬 약초를 상처에 발라 치료하는 오랑우탄의 모습이 처음으로 포착됐다.
3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에 따르면 독일 막스 플랑크 동물 행동 연구소(MPIAB) 이자벨 로머 박사팀은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를 통해 인도네시아 야생 수마트라 오랑우탄(Pongo abelii)인 라쿠스(Rakus)가 약초를 먹고, 씹어서 으깬 약초를 상처에 발라 치료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수마트라섬 아체 남부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에서 오랑우탄을 연구해왔다. 그러던 2022년 6월 라쿠스라 오랑우탄이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뒤 약초를 먹고, 씹어서 으깬 즙을 상처에 반복해 바르는 모습을 처음 포착한 것이다.
지난 2009년 처음 관찰된 오랑우탄인 라쿠스는 1980년대 후반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오른쪽 눈 아래 뺨이 깊이 파이는 상처를 입은 라쿠스는 3일 뒤부터 아카르 쿠닝(학명 Fibraurea tinctoria)이라는 약초의 줄기와 잎을 씹어서 나온 즙을 상처에 7분 동안 반복해서 발랐다.
아카르 쿠닝은 동남아 열대우림에서 발견되는 덩굴식물로 항균, 항염증, 항진균,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약초다. 진통·해열·이뇨 효과가 있어 전통 의학에서 이질, 당뇨병, 말라리아 등 치료에 주로 사용된다.
라쿠스는 이후 잎을 씹어 상처 부위가 덮이도록 바르고 30분 이상 이 약초를 먹었으며, 관찰 결과 며칠 동안 상처 부위의 감염 징후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팀은 "라쿠스가 아카르 쿠닝을 다른 신체 부위에는 바르지 않고 30여분에 걸쳐 상처에만 반복해서 바른 것으로 미뤄볼 때 의도적으로 약초를 이용해 얼굴 상처를 치료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야생 동물이 약효가 있는 식물을 이용해 상처를 치료하는 행동에 대한 첫 보고"라며 "이는 약초를 이용한 적극적인 치료 행동이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 조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