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근로자가 회사 차량을 몰다가 사고로 사망한 경우 당시 무면허 상태였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숨진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지난달 7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21년 새벽 시간대 경기 화성 소재의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흙을 운반하기 위해 미개통된 도로를 운전하던 중 배수지로 추락해 숨졌다. 당시 그는 1종 대형 운전면허가 있었으나 음주운전으로 취소된 상태였다.
유족들은 2022년 4월 A씨가 근무 중 사망했기에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며 공단에 유족급여 등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사고 당시 A씨는 무면허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도로교통법 등을 위반한 중대 과실로 사고가 발생해 산재 인정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근로자의 범죄 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앞서 A씨는 2015년 음주운전으로 인해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받았다. 2016년 1종 대형견인차 운면허와 이듬해 1종 대형 운전면허를 취득했으나 이 역시 2021년 음주운전으로 취소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족 측은 A씨가 무면허 상태로 차량을 운전한 것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며, 회사 역시 A씨가 차량을 출퇴근·업무용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이유에서 사업주의 지시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유족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1991년부터 운전한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사고 현장은 미개통된 도로로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노면이 젖어 매우 미끄러웠고 조명시설 등 안전시설물은 없었다"며 "사고가 온전히 망인의 업무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으며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공단이 불복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