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와~ 눈을 뜰 수가 없네. 눈 때문에 눈이 아프다 아파."
올해 겨울은 유난히 눈 소식이 잦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A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경기 수원시 창룡문으로 향한다. 눈이 쌓이면 성곽을 따라 진 경사가 '눈썰매 핫플레이스' 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던 지난달 25일. 예상대로 이른 아침부터 창룡문 일대는 비료포대와 플라스틱 썰매, 튜브 등을 가지고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신나게 썰매를 타던 것도 잠시, A씨는 눈에 반사된 햇볕으로 눈을 뜨기조차 힘들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선글라스를 낀 사람도, 스키장에서 낄 법한 고글을 쓴 사람도 한둘 보였다. A씨는 "눈에 반사된 빛 때문에 눈 뜨기도 힘들었고 시간이 지나니 앞도 잘 보이지 않아 더 놀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며 "집에 와서도 한동안 눈이 충혈되고 뻐근해서 다시는 눈밭에 맨눈으로 나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펑펑 내리는 눈으로 펼쳐지는 절경은 그야말로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낭만이다. 이 그림 같은 경치를 만끽하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겨울등산을 하는가 하면 스키장과 눈썰매장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바로 각막 화상이다.
소복이 쌓인 눈은 절경을 만들어 내지만 희고 반짝이는 만큼 반사도가 높아 안구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민지 고려대 안산병원 안과 교수는 "잔디나 모래사장의 햇빛 반사율은 최대 20% 정도인데 흰 눈의 햇빛 반사율은 4배 이상 높은 약 80%에 이른다"면서 "문제는 각막도 피부처럼 열이나 화학물질, 자외선에 의해 손상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각막은 시각에 필요한 빛은 투과시키고 해로운 빛(자외선)은 흡수해 걸러주는 안구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특별한 보호 장비 없이 설원에 반사된 많은 양의 자외선에 안구가 장시간 노출되면 각막에 손상이 축적돼 화상을 입게 된다.
각막 화상을 입으면 안구 통증과 눈부심, 충혈이 나타나며 중증의 경우 시력 저하와 일시적 야맹(夜盲)도 겪을 수 있다. 손상 직후 증상이 바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수 시간 후에 증상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눈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막 화상을 광각막염, 혹은 설맹이라고 부른다.
우 교수는 "장시간의 자외선 노출은 각막뿐 아니라 망막도 손상할 수 있고 2차 감염으로 인한 각막 궤양도 주의해야 한다"며 "정도가 심할 경우 각막이 정상적인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되고 영구적으로 시력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각막 화상이 의심될 때는 일단 차가운 물수건이나 얼음찜질을 통해 화상 부위를 진정시키고 빨리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
안과에서는 상처 부위 소독과 인공눈물, 항생제, 항염증 안약 및 경구약 투여로 추가 손상을 방지한다.
초기 처치가 적절하다면 각막 화상은 대부분 수주일 내에 회복되지만 때로 영구적인 손상을 유발하기도 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 교수는 "추울 때는 오히려 눈을 보호하는 장비를 잘 하지 않는데 설원에서의 야외 활동 시 반드시 자외선 차단 지수가 높은 고글이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게 좋다"며 "각막 화상은 자외선뿐 아니라 열이나 화학물질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고온환경이나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환경에서도 안구 보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