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안태현 안은재 기자 = 지난 2021년 '오징어 게임'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심지어 극 중 등장한 게임들까지 유튜브와 틱톡으로 재소비 됐다. 이후 글로벌 시청자들의 관심은 한국 드라마에 더욱 몰리기 시작했다. 현재도 한국 드라마들은 글로벌 OTT를 중심으로 주목 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직접 사용자들의 주간 시청시간을 집계해 발표하는 지표에서도 한국 드라마들은 꾸준히 '전 세계 비영어권 TV프로그램(쇼)' 부문의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지구촌 시청자들의 마음을 공략하고 있다.
◇ 넷플릭스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속 우뚝 선 K콘텐츠
엔터테인먼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지난 2021년 9월1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미국 가정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 드라마를 시청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낼 정도로 전 세계에서 흥행했다. 특히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전 세계 톱10 TV쇼 차트에서 45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됐다. 이어 지난 2022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시상식인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아시아 최초로 남우주연상(이정재), 연출상(황동혁) 등 6관왕을 차지, 또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오징어 게임'은 올 하반기에는 시즌2로 글로벌 시청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 뒤 넷플릭스는 더욱 공격적으로 한국 콘텐츠들에 대한 투자를 이어갔다. 그 결과 다수의 한국 콘텐츠들이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면서, 글로벌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오징어 게임' 이후에도 넷플릭스가 내놓은 오리지널 시리즈들인 '지옥', '고요의 바다', '지금 우리 학교는', '수리남' 등의 작품들도 넷플릭스가 공식 집계한 ‘전 세계 비영어권 TV프로그램(쇼)’ 주간차트에서 1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23년에도 흐름은 이어졌다. 2022년 12월30일 파트1과 지난해 3월10일 파트2를 순차적으로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같은 차트에서 3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공개 첫 주에는 42개국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특히 '더 글로리'는 흥행 성적 외에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성취까지 이뤄냈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성인이 된 뒤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다루는 만큼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학교 폭력 문제를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해외 언론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포브스는 '더 글로리'에 대해 "공포에서 멜로드라마로, 또 살인 미스터리로 예고 없이 스토리의 방향을 틀어버린다"라며 "창의적인 각본"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더 글로리'는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한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성인이 되도록 겪는 정신적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라는 호평을 남겼다.
◇ 글로벌 OTT 앞세운 K드라마의 세계 공략
넷플릭스가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 외에도 넷플릭스를 창구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소개된 다양한 한국 드라마들도 관심을 끌었다. 이 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내맞선' 등은 '전 세계 비영어권 TV프로그램(쇼)' 주간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남다른 흥행 성적을 세웠다. 이외에도 많은 한국 드라마들이 해당 차트에서 10위권 안에 들면서, 한국 드라마는 글로벌 경쟁력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지난 2023년에는 디즈니+(플러스)의 성과도 돋보였다. 바로 '무빙'이 폭발적인 성공을 이끌어 낸 것이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 및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쉽게 도전하지 않았던 히어로 액션물이었기에 공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2023년 8월9일부터 9월20일까지 회차별로 공개된 '무빙'은 한국을 비롯한 디즈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공개 첫 주 최다 시청 시리즈에 오르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무빙'은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스트리밍 플랫폼 훌루(Hulu)에서 공개 첫 주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중 시청 시간 기준 가장 많이 본 작품으로 기록되면서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러한 흥행은 한국의 히어로 액션 드라마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해낸 것이기도 했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무빙'을 두고 "'오징어 게임'에 이어 아시아에서 탄생한 최대 히트작"이라고 보도하는가 하면, 포브스는 "호소력 짙은 감정적 서사를 지닌 이야기, 탄탄한 스토리가 계속해서 흥미를 자극한다"라고 호평했다. 미국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IGN 또한 "모든 것이 놀랍고 강력하다, K드라마가 슈퍼 히어로 장르 역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답을 제시했다"라고 평했다.
'무빙'의 성공에 대해 캐럴 초이 디즈니+ 아시아 태평양 지역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 총괄은 "'무빙'의 최종회는 공개 첫 주 대비 약 3배 이상 시청하면서 디즈니+에서 최다 시청을 기록한 콘텐츠가 됐다"라며 "'무빙'의 성공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디즈니의 확신과 의지가 더 강해졌다"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어 "한국이 우리의 우선순위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드라마가 이처럼 남다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된 요소는 무엇일까.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 드라마는 한국인의 DNA에 있는 공동체 문화를 독특한 스타일의 세련된 방식으로 이야기 한다"라며 "빈부 격차, 입시 경쟁, 가짜 뉴스 등 선진국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를 다루면서도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해 해결 방식을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눈앞에 벌어진 문제 표현 방식, 독특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가 매력적이며 서구권 국가에서는 (한국 드라마들이) 거대 담론을 해결하는 방법이 신비로워 보여서 매료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닥터 차정숙'과 '돼지의 왕'을 연출한 김대진 PD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 한국 드라마가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질의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을 입증했기 때문에 믿고 쓰는 콘텐츠가 됐다"라고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시장 속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김 PD는 "OTT에서는 사람들이 바로 다음 회로 이어볼 수 있게 해야 콘텐츠가 성공하는데, 한국 드라마는 다음 회를 이어서 보게 하는 힘이 있다"라며 "에피소드 형식으로 주로 한 회에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미국 드라마들 보다는 후킹 포인트가 있는 한국 드라마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 K드라마 글로벌 성장세지만 제작 시장은 난항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K드라마들이지만, 이와 별개로 우려의 시선들도 등장하고 있다. OTT 중심으로 콘텐츠 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방송 채널 중심이었던 드라마 제작 산업이 여러 홍역을 겪고 있어서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된 부분은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흥행 이후 지속된 한국 콘텐츠의 과잉 공급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제작된 한국 드라마는 약 160편으로, 최근 3년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OTT 중심으로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이 변화되면서,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이 제작비가 큰 드라마들의 편성을 자체적으로 줄여 나가며 드라마들을 담을 그릇들이 작아졌다. 결국 제작을 마쳤음에도 여전히 여러 방송사 및 OTT에서 편성 받지 못해 표류하는 드라마들도 많아진 상황이다.
한국 콘텐츠들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작품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에 방송 채널들도 무턱대고 드라마를 편성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시작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으로, 광고주들의 방송 채널 광고비 책정도 줄어들었다. 결국 방송사들은 드라마보다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은 예능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편성하면서 많은 드라마들이 갈 곳을 잃게 됐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현 상황에 대해 "OTT는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의 제작사에 투자를 크게 몰아줘서 제작비 규모를 키우는 쪽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제작사는 작은 규모로 가야하는 건데, 내수 시장의 제작 기반이 불안정성이 커지다 보니 드라마 제작 산업들이 힘들어지는 국면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며 "한 작품의 흥행에만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산업을 안정적인 산업 기반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위기가 기회라는 시선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투자를 받은 드라마가 방송이 되고 그걸 토대로 또 다른 드라마에 투자를 하는 선순환이 돼야 산업이 돌아간다지만, 지금의 상황은 '만들면 다 된다'라는 개념 속에서 과잉 제작이 되면서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질적으로 뛰어나고 신선한 기획의 작품들에 집중해야 드라마가 강해진다는 걸 제작자들도 느꼈을 것이므로, 앞으로 (산업 전반적인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 K드라마의 글로벌 경쟁력 전망은
우려의 시선도 분명 있지만, 글로벌 OTT들을 창구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일단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의 확장이 지속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 외에도 넷플릭스는 '스위트홈'의 시즌2를 내놓았으며,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의 후속 시즌 제작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한 작품의 흥행 뿐만 아니라 후속작의 성공까지 노려보면서 한국 드라마들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기존의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콘텐츠 확장도 이뤄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의 실제 드라마 내용을 토대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를 기획했다. 2023년 11월22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는 456명의 참가자들이 456만달러를 두고 경쟁하는 내용을 담았다. '오징어 게임' 속 내용과 동일한 구성으로, 참가자들은 드라마에 등장했던 '무궁화꽃을 피었습니다', '징검다리 건너기', '구슬치기' 등의 게임을 펼쳐 최종 우승자를 뽑는 형식으로 펼쳐졌다. 단순히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고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들의 경쟁력을 반짝 인기가 아닌 계속해서 유지해나가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새로운 콘텐츠의 개발이란 분석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요즘 드라마 제작 시장의 추세는 웹툰, 웹소설 등의 IP를 활용한 드라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제작 방향성은 단순히 성공 공식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바라봤다. 이어 "'오징어 게임'의 경우에도 기존의 제작사에서 외면 받았던 파격적인 작품에 투자를 해서 탄생한 킬러 콘텐츠였다"라며 "결국에는 새로운 사람들의 신선한 이야기를 통해 파격적인 이야기가 탄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