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네 아들 명의로 휴대전화 하나만 개통하자."
2018년 11월5일 A씨(40대)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 여자친구 B씨에게 이같이 부탁했다. 부산구치소 재소자인 A씨가 퇴원 후 향한 곳은 다름 아닌 B씨 모친의 집이었다.
A씨는 2018년 1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절도) 등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그러다 같은해 10월10일 악성고혈압 등 증세로 검찰에서 형집행정지 허가 결정을 받고 잠시 석방됐다. 구치소 재소자는 구속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야만 병원 입원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A씨는 한달이 지나서도 구치소로 복귀하지 않고 도주 생활을 이어갔다. 검찰이 입원 치료 기간 A씨가 한 형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구치소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검찰이 A씨에게 전화, 문자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이후 A씨의 집까지 찾아갔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연장 신청이 불허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추적을 피하고자 B씨에게 "네 아들 명의로 휴대전화 개통해 주고 모친의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B씨는 A씨의 부탁을 들어줬고 A씨는 같은해 12월17일까지 B씨의 모친 집을 은신처로 삼았다.
경찰은 11월19일 B씨에게 A씨의 소재를 물었지만 '얼마전 울산에서 전화를 받고는 연락이 끊겼다'고 거짓말했다. B씨는 이에 대해 A씨가 거짓말을 시켰다고 법정 진술했다.
끝내 수사기관에 붙잡힌 A씨는 B씨에게 도피 교사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형집행정지 연장 신청에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자동으로 연장이 허가된 줄 알았고, 자신의 집 현관문이 잠겨 있어서 잠깐 B씨 모친의 집에 거주했다는 것이다.
다소 믿기 어려운 이 주장은 예상대로 1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선 배심원 7명이 징역 1년형을 만장일치로 평결했다.
재판부는 "A씨에겐 도피 의사가, B씨에겐 도피시킨다는 인식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B씨가 A씨와 접견할 때 '여관에 있으라고 그랬잖아'라는 발언도 증거로 확인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국가 형사사법작용의 적정한 행사를 침해하는 범죄로 그 죄가 가볍지 않다"며 "피고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1심이 유죄로 인정한 도피교사 혐의는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형법 제151조상 '도피하게 하는 행위'는 재판 및 형의 집행 등 형사사법의 작용을 곤란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로 봤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A씨의 행위가 도피에는 해당하나, 애인 아들 명의의 휴대전화와 은신처를 제공받은 행위는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고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보는 게 맞다는 판단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 제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방어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B씨로 하여금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대법원에 가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