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영화광' 청년 봉준호의 20대 시절은 어땠을까. 또 지금의 거장에게 영향을 줬던 영화광들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는 27일 처음 공개되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이하 '노란문')는 1990년대 초, 시네필들의 공동체인 '노란문 영화 연구소' 회원들이 30년 만에 다시 떠올리는 영화광 시대와 청년 봉준호의 첫 번째 단편 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노란문'은 지금은 세계적인 감독이 된 봉준호라는 거장의 30년 전 영화 공부의 출발점과 이를 함께 했던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봉준호 감독의 청년 시절과 열정적으로 영화의 숏을 분석했던 자료들, 그가 최초 시사회를 진행했던 단편 '룩킹 포 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의 일부 장면도 공개됐다.
'노란문'은 봉준호 감독 이야기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과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함께 했던 이들이 등장한다. 지금은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당시에는 봉준호 감독과 깊은 열정을 나눌 만큼 청춘의 활기를 보여줬던 영화광들이었다. 이혁래 감독은 "물론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이라 할 수 있는 시간들"이라면서도 "혼란스러운 시대이지만 접점이 있는 사람들과의 가치 있는 만남, 관객들도 그런 작지만 행복한 경험을 하길 바란다"는 진심을 전했다.
이들 중심에서 그 기억을 함께 했던 연출자인 이혁래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영화의 시작은.
▶'노란문' 활동하던 30년 전과 지금 비교하면 영화 산업이 달라졌다. 달라진 한국 영화의 위상,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봉준호 감독이기도 했다. 거창하게 얘기할 건 아니지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일 수 있겠다 했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에 없으면 안 됐다. 처음 이 이야기가 나올 당시 그 자리에 봉 감독이 없었는데, 전화해서 '다큐 하나 만들어볼까'라고 했더니 내 건 조건이 '내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된다, 내가 그 멤버들 중 한 명으로 나와야 한다'였다. 나도 속으로 '그렇게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너무 뻔하니까.(웃음)
-봉준호 감독이 왜 그런 조건을 내걸었나.
▶봉준호 감독이 훌륭한 인격자이기도 하지만, 유명해지고 나서 위인전도 나오고 본인 동의와 관계 없이 TV 다큐멘터리도 나온 적이 있다. 마치 영웅 성공담 같이 나왔는데 봉 감독이 싫어할 만한 방식으로 나오다보니까 그런 것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조건을 내세웠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저는 극장용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었다. 제작사 브로콜리픽쳐스 대표인 김형옥 대표도 '노란문' 멤버라 그 모임에 있었는데, 그때 이분이 넷플릭스에 제안을 했다. A4 두 장 정도의 시놉시스를 담은 기획안을 만들어서 냈는데 사실 걱정이 있었다. 저는 봉준호 감독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봉준호 감독이 제시한 조건도 지켜야 했는데 만약 넷플릭스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봉준호 감독과 비슷한 비중으로 참여하는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불안했다.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했다. 그런데 콘텐츠팀 담당자가 '동아리 얘기네요?라고 하더라. 너무 뜻밖에도 봉준호 감독의 조건과 제가 전달했던 기획 그대로 넷플릭스에서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봉준호 감독이 올해 4월 말에 '미키 17' 촬영을 위해 런던에 가야했다. 1년 가까이 한국에 못 온다고 하더라. 그래서 4월 중순 쯤 준비가 많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틀에 걸쳐 봉 감독의 단독 인터뷰와 2인 인터뷰를 촬영했다. 일정이 꼬였다 생각했는데 그때 촬영한 게 영화 전체 이야기를 잡아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은 어땠나.
▶단 한번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 하지만 촬영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얘기를 하면 재밌겠다'하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풀어줬다.
-'노란문' 회원들 섭외는 어떻게 이뤄졌나.
▶여기 나오는 출연진 중에 일부는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왔지만 상당히 많은 분들은 '노란문' 이후에 못 뵀다. 모두들 이 다큐멘터리 제작 소식에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가 "이게 얘기가 돼?" 였다. "우리들끼리 보고 우리들끼리 즐거울 수 있는데 일반 관객들이 재밌어 할까?" 하더라. 더 나아가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가 되니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부담스러워하더라. 저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구성이나 방향에 대해 출연자들과 공유하진 않는다. 촬영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말씀을 드리지 않고 '촬영하러 오세요'라고 했다. 질문하고 답변 받고 끝날 때까지 다들 부담을 갖고 계시더라. 창피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다.
-인터뷰에서 '노란문' 멤버들은 스스로를 '사회부적응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멤버들에게 '노란문'은 어떤 의미였다고 보나.
▶저는 멤버들 중 막내였고 1991년도부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래서 각 멤버들과 경험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누나들이나 형들, 출연하신 분들 보면 '노란문'은 은신처 같은 느낌도 있었다. 당시 20대들은 감당하기 힘든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N인터뷰】②에 계속>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