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벗고 가만히 있어! 담배빵하게"
검사 시절, 심각한 데이트 폭력 사건을 처리했었다. 가해자는 데이트 악마였다.
가해자는 여자 친구에게 속칭 ‘담배빵’(맨 살에 담뱃불을 지지는 것)을 했다. 장소는 모텔이었고, 여자 친구는 옷을 벗은 상태였다. 가해자는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했다. 그 후 말다툼했다. 심하게 여자 친구를 나무랬다. 그리고 폭발했다. 여자 친구는 무서웠다. 옷을 입고 모텔방을 나가려 했다. 가해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자기야! 옷 벗고 가만히 있어!! 담배빵하게...”. 여자 친구는 소름이 돋았다. 순간적으로 몸이 얼었다. 꼼짝 못하고 담배빵을 당했다. 가해자의 말에 의하면, 담배빵하면서, “머리를 조금 쥐어박기도 했다”고 한다.
나체로 얼어붙은 여친 주요 부위에...
담배빵은 여성의 은밀한 신체 부위에 이루어졌다. 가해자는 가슴과 주요 부위를 노렸다. 여자 친구는 치욕적이고,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극심한 공포에 저항할 수 없었다. 끔찍했던 모텔방을 나선 후, 여자 친구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무서워서 몇 주 고민했지만, 결국은 고소장을 내기로 결심했다. 그후, 경찰은 가해자를 조사했다. 가해자는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한다며 싹싹 빌었다. 가해자는 벌금 전과만 3회 있을 뿐, 대단한 전과는 없었다. 담배빵 상해가 엽기적이기는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3주 상해에 불과했다. 가해자는 직업도, 주거도 일정하다며, 도망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경찰은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리고, 필자(당시 검사)가 이 사건을 배당받았다.
"맞을 만 하죠, 여자친구가 절 미치게 만들어요"
필자는 가해자를 소환 조사했다. 여자 친구에게 재범할 우려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검사의 책무라고 생각했다. 가해자의 속마음을 알아야 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속마음을 캐냈다. 가해자는 △여자 친구가 자신을 미치게 만들고, 맞을 만하다고 말했다 △다른 남자에게 ‘헤픈 여자’이고 △자꾸 자신을 배신해서 때린 것이며 △이번에 고소한 것도, 합의해주지 않는 것도,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검사에게는 자백하며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말했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
벌금 전과, 알고보니...여친 어머니집 침입해 폭행
가해자는 위험했다. 설사, 여자 친구가 잘못했어도, 담배빵 등 엽기적 폭력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벌금 전과 3회가 뭐냐고 물으며 판결문을 확인했다. △여자 친구와 그 모친을 때리고 △여자 친구를 찾겠다며 모친 집에 주거침입했던 것이었다. 다만, 여자 친구와 합의해서 벌금으로 끝났었다. 필자는 걱정스러웠다. “불구속 기소하면, 또 다시 재범하지 않을까?”
피해자 진술을 들어보았다. △친구였던 가해자가 매달려, 억지로 사귀게 되었는데 △‘헤픈 여자’라니 너무 황당하고 △억지와 꼬투리 잡기로 데이트 폭력과 사과가 반복되었으며 △과거 벌금 사건의 합의도 가해자의 강요로 인한 것이고 △사건화되지 않은 데이트 폭력도 여러 번 있었고, 그 정도도 가볍지 않으며 △지금도 가해자의 해코지가 두렵다고 했다.
가해자 긴급체포! 휴대폰 압수해보니, 다른 여자와...
필자는 구속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격리·보호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미체포 상태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가만 두지 않을 위험이 컸다. 결국, 필자는 사건화되지 않았던 데이트 폭력을 추가 입건하고, 가해자를 긴급체포한 후 구속했다. 아울러, 가해자의 휴대폰을 압수했다. △피해자를 위협하거나 합의를 강요하는 문자 메시지가 있는지 △피해자에 대한 몰카 동영상이 있는지(피해자는 몰카도 걱정했었다.) 확인했다. 그런데, 휴대폰에서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속삭이는 문자 메시지, 민망한 사진이 다수 발견되었다. 황당했다. 피해자를 사랑한다던 가해자가 ‘헤픈 남자’였던 것이다. 필자는 엄히 경고했다. 또 다시 피해자를 해치면 보복범죄로서 최악의 처벌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수갑을 찬 채로, 고개를 떨궜다.
다른 사람 마음을 얻어야 내가 잘 된다
살다보면, 자기만 생각하고, 남 생각은 안하는 사람을 보곤 한다. 내 탓은 안하고, 남 탓만 한다. 당연히 다툼과 문제가 생긴다. 극단화되면 범죄다. 데이트 폭력, 스토킹이 이렇다. 상대방 입장은 안중에 없다. “내가” 미치겠으니까. 하지만, 뭐든지 혼자 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함께 하려면,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만 생각하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다툼만 대량 생산된다. 결국,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되는 일이 없다. 그러면, 남 탓을 더 한다. 안 좋은 일이 더 생긴다. 악순환이 벌어진다. 심해지면, 남을 원망하고 저주하며, 폭력도 불사하는, 악마화가 진행된다. 결국, 자기만 더 손해다.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으니까. “내가” 잘 되려면, “남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 마음을 얻어야, 내가 잘 되는 것이다. 폭력으로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데이트 폭력은 바보짓이다.
[필자 소개]
김우석 변호사는 청와대 파견, 정부 합동 반부패단 총괄국장, 서울중앙지검, 지청장 등을 거친 매서운 검사였다. 항상 구속할 사람을 찾았단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