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이제는 세계적 감독이 된 봉준호 감독의 첫 영어 영화 설국열차는 기후변화나 환경과 관련해서도 유의미한 영화다. SF 만화인 프랑스 원작을 봉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각본)화하면서 기후변화로 일어날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그려진 원작 만화는 동서 냉전과 이에 따라 개발된 기후무기로 인해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봉 감독의 설정은 좀 더 구체적이다. 봉 감독은 심각해진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79개국이 공동으로 살포한 ‘CW-7’의 부작용으로 지구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빙하기가 도래할 것으로 봤다.
두 가지 가정 모두 비극적인데, 더 암울한 것은 이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지구온도가 산업화 시대와 비교해 1.1도가량 올라갔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6월부터 35도를 웃도는 폭염에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우리는 지난 겨울 북극 한파를 겪었다. 지난해 12월1일, 즉 겨울철(12~2월) 첫날의 서울 기온은 -9.4도까지 떨어지면서 116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추웠다.
이상기후로 인한 극한의 폭염만큼 이상저온도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 3월 영국 스코틀랜드의 기온은 -15도까지 떨어졌다. 이 지역 최저기온으로는 역대 최저치다. 지난 5월8일 2개 주를 제외한 호주 전역의 최저기온은 영하까지 떨어졌다.
이유는 다양하다. 물론 영화처럼 화학물질을 살포한 것 때문은 아니지만 지구온난화가 가속하면서 빙하가 녹고, 극 지방 냉기를 가둔 제트 기류가 약해지면서 한기가 더 빈번하게 인류를 덮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지구온난화'라는 생각에 더위만 걱정하던 이들에게는 갑작스러운 한 방이다.
설국열차 속 가정처럼 화학물질로 기후변화를 늦추거나 조절할 수는 없을까.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대기 상층부에 탄산칼슘 및 황산염 입자를 살포해 햇빛 반사율을 높이는 방안을 공개한 바 있다.
스코펙스(SCoPEx)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기술은, 그러나 환경단체와 학계 등의 반발로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완벽하지 않은 기술로 지구를 실험실로 쓰지 말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좁은 지역에서의 실험이라도 인류 전체, 나아가 생태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봉 감독의 설정상 설국열차는 2032년 출발한다. 영화 개봉(2013년) 기준으로 20년 뒤였던 게 벌써 10년 뒤로 다가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3월 발간한 제6차 평가보고서 종합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가 어떤 방법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더라도 가까운 미래인 2021~2040년에 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임계점(Tipping point)인 1.5도에 도달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과학적 분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봉 감독의 상상대로 2032년이면 지구가 얼어 버리든지 쪄 버리든지 살기 어려운 환경이 돼 있을까. 10년 뒤 다시 재생해 볼 설국열차의 설정이 제발 영화 속에만 머물기를 바란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