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하숙집 마당에 핀 양귀비, 감기 걸기면 집주인이...

고의성 여부로 판단

2023.06.15 05:00  
[파이낸셜뉴스] #30대 회사원 A씨는 '양귀비'란 단어를 들으면 10년 전 하숙집이 떠오른다. 하숙집 앞마당에는 양귀비가 심겨 있었다. 특히나 날씨가 더워지려는 5~6월에는 집주인 아주머니는 늘 분주했던 기억이 있다. 양귀비가 동그란 열매를 맺게 되면 따서 꿀과 함께 버무려서 이른바 '양귀비 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하숙생들이 배가 아프거나 감기로 고생했을 때면 '양귀비 청' 먹으라고 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약 성분이 있는 양귀비를 기르고 청으로 제조해 먹는 것이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인식이 없었다.

양귀비 재배와 관련해서는 합법과 불법이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련해 '고의성'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적발된 사람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 앞마당에서 양귀비가 자라났거나 마약용 양귀비를 관상용으로 오인해 키우다가 경찰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소량이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재배했다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먀약용, 한주라도 불법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양귀비 대마 단속기간'(매년 4월~7월 사이) 중 검거된 양귀비 재배 사범 수는 지난해 1545명으로 5년 전인 2018년(1060명)과 견줘 47.75% 증가한 규모다.

양귀비는 모르핀과 헤로인, 코데인 등 중독성이 강한 마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마약류관리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단 한주만이라도 양귀비를 고의로 재배한다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다만 양귀비를 재배한다고 해서 모두 불법은 아니다. 불법은 '파파베르 솜니페룸 엘'과 '파파베르 세티게룸 디시' 등 마약을 만들 수 있는 양귀비에만 해당한다. '털양귀비'와 '개양귀비' 등 관상용 양귀비의 경우 재배를 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마약용과 관상용 양귀비는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마약용 양귀비는 줄기가 매끈하고 잔털이 없으며 둥글고 큰 열매가 열리지만, 관상용 양귀비는 줄기 전체에 잔털이 많고 열매가 작은 도토리 모양이다. 또 마약용 양귀비의 꽃은 붉은색에 꽃술을 둘러싼 검은 반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일반인 입장에서 마약용 양귀비와 관상용 양귀비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봄부터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해마다 엄청난 양의 관상용 개양귀비가 피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조성 초기에는 관상용임에도 마약용 양귀비가 재배되고 있다는 신고가 있었다고 한다.

고의성 여부가 기준
마약용 양귀비를 재배했다고 해도 고의성 여부가 중요하다는 판단도 있다. 예컨대 씨앗이 바람에 타고 집 앞마당 등에 자라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우연한 계기로 자란 마약용 양귀비를 판매 등 고의성을 가지고 재배에 나서지 않는다면 처벌까지 이뤄지는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은 "물론 양귀비 재배에 고의성이 있는지 없는지 등은 면밀히 따져야 하겠지만, 고의성이 없다면 입건하지 않는다"며 "보통 고의로 양귀비를 키우는 경우 50~100주 많으면 200주 넘게 양귀비를 재배하지만, 자연 발화인 경우는 1~2주 정도 자란 것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꽃씨가 흩날려 집 앞마당에 양귀비가 피어있다는 신고는 대도시권에서도 종종 들어온다"며 "양귀비를 소지·재배하는 행위만으로도 경찰 조사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덧붙였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