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서 집중력이 향상된다고 속여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마약을 탄 음료수를 나눠주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일명 '마약 음료'를 권유한 일당 4명은 해당 약물이 기억력과 집중력 강화에 좋은 제품 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약이라고 속여 학생들에게 시음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당국은 물론 학교, 학생, 학부모들 사이에선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관련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마약과의 전쟁 강도를 높일 것을 주문했다. 윤 대통령의 '마약사범 엄단' 지시에 따라 일산 경찰서에서 진행되는 마약수사를 모두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로 이관, 전담수사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선 관련 법안까지 신속하게 발의하는 등 핫이슈로 급부상한 상태이다.
■"학교 밖에서 주는 간식 많이 먹었는데 소름돋아"
7일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은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에 강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단국대학교부속고등학교에 재학하는 최모(18)군은 "평소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초콜릿과 사탕 등을 먹곤 했다. 나 뿐만 아니라 같은 반 친구들 상당수도 이렇게 얻은 간식을 먹은 경험이 많다"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마약을 먹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최군 이외에 다른 학생들 역시 학교 밖에서 무료로 나눠준 간식 등을 얻어먹은 경험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혹시 자신이 먹은 것이 마약이 아니었을까'하는 걱정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고 입을 모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김모(17)군은 "학원 등에서 홍보물을 나눠줄 때 초콜릿같은 것으로 받은 적이 있는데,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부모님께서도 계속해서 모르는 사람이 밖에서 나눠주는 간식 같은 것을 먹지 말라고 당부하시더라"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답했다.
휘문중학교에 다니는 이모(16)도 "평소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음식들을 아무 생각 없이 먹어왔는데, 이렇게 위험한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며 "어쩌면 마약이 아니라 다른 약이 들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학생들 못지않게 학부모들 역시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초등학생 아이 두 명을 키우는 임모(41)씨는 "학원 등·하원 등 아이들이 혼자 집 밖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마다 먹는 음식을 모두 통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걱정이 크다"면서 "앞으로는 음료수 하나 사 먹이는 것도 무섭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울경찰청은 지난 6일 유사 사건을 방지를 위해 서울 시내 초·중·고교 1407교와 학부모 및 학생을 대상으로 '긴급 스쿨벨’ 시스템을 발령했다. 스쿨벨 시스템은 새로운 유형의 청소년 대상 범죄가 발생할 시 학생·교사·학부모에게 해당 사실을 카드뉴스 형식으로 신속하게 전파하는 시스템이다.
또 마약 음료 사건이 난 강남구 대치동을 비롯해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 중계동 등 학원 밀집 지역 4곳에 대해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집중적인 예방 순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더 이상 '마약 청정국' 아냐
한편 지역주민들은 비교적 마약문제에서 한 발 비껴나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 사회에 이미 은밀하게 마약이 깊숙이 파고 들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대치동에 거주하는 A씨(65)는 "미국에서 살았을 때 마약 문제로 지역사회가 떠들석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며 "한국에 이사 오면서 더 이상 마약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했는데, 이제는 안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지역주민 B씨는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마약 관련 범죄가 뉴스에 나오더니 우리 동네에서 버젓이 '마약 음료'가 유통되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면서 "마약이 나의 일상 깊숙한 곳에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의 '마약사범 엄단' 지시에 따라 일산 경찰서에서 진행되는 마약수사를 모두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로 이관, 전담수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도운 대변인은 이날 오후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이같이 전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에서 경찰의 마약수사에 긴밀히 협조할 수 있도록 필요한 준비에 들어갔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보도를 접하고 "검경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마약의 유통·판매 조직을 뿌리 뽑고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라"고 지시했다고 이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밝힌 바 있다.
■정치권도 관련법안 신속 발의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마약 강제 투약 범죄자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도 제출했다.
국민의힘 유경준(서울 강남병) 의원은 이날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투약한 경우 법정 최고형인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투약하는 경우 5년 이상 징역, 대마를 섭취하게 한 경우 2년 이상의 징역에 각각 처하도록 한다.
개정안은 미성년자의 의사에 반해 마약을 투약한 경우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대마를 섭취하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각각 처하도록 처벌 수위를 대폭 높였다.
또 미성년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사에 반해 헤로인이나 의료용이 아닌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투약하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하도록 했다.
마약, 의료용이 아닌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투약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유 의원은 "마약 청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명성이 무색할 만큼 유흥업소 등을 통해 은밀히 거래되던 마약이 어느덧 주택가와 학원가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이번 학원가 마약 테러와 같이 마약을 활용한 금품 갈취 등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엄벌에 처하도록 해야 한다"며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