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한국의 소득동질혼이 34개국 중 가장 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고소득 남녀끼리 혼인이 주요국보단 적었으며, 고소득 남성과 저소득 여성, 저소득 남성과 중위소득 여성 간 결합이 많았다.
연구진은 그 이유로 크게 3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각각 미흡한 재분배 정책, 치열한 교육열, 빈번한 경력단절 등이다. 대부분이 한국 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맞벌이나, 외벌이나…'끼리끼리' 결혼 드물다
한국은행이 지난 19일 공개한 BOK 경제연구 '소득동질혼과 가구구조가 가구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 : 국제비교를 중심으로'를 보면 이런 연구 결과가 나타나 있다.
이번 연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에 대만을 추가해 총 34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소득 동질혼과 관련한 3개 지표 모두에서 한국은 최하위권에 들었다.
'부부 소득 간 순위 상관계수'와 '부부 소득 간 상관계수'는 각각 0.03과 0.06으로 0에 가까워 34개국 중 33·32위였다.
부부 소득 간 상관계수는 말 그대로 남편과 아내의 소득이 서로 얼마나 같은지를 보여준다. 이 숫자가 1에 가까울 수록 부부는 소득 수준이 같으며, 0에 가까울 수록 소득과 관계없이 무작위적 '제비뽑기' 결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부부 소득 간 순위 상관계수는 빌 게이츠와 같은 일부 특이 케이스가 지표를 왜곡할 수 있어 소득 간 '순위'의 유사성을 살펴 본 지수다.
연구를 수행한 한은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 소속 박용민 차장은 "이들 상관계수로 볼 때 우리나라의 결혼 패턴은 (소득을 고려하지 않은) 무작위에 가까운 것"이라며 "맞벌이 가구만을 대상으로 측정해도 이들 계수는 각각 0.10, 0.17로 주요국에 비해 낮았다"고 설명했다.
소득이 같은 부부를 얼마나 자주 관측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소득동질혼 지수'도 1.16배로, 34개국 중 최하위였다.
이 지수는 소득을 전혀 고려치 않은 무작위적인 결혼이 이뤄졌을 때 소득이 동일한 부부를 관찰할 수 있는 정도를 '1배'로 상정한다. 즉, 한국은 소득 분위가 동일한 부부가 제비뽑기 결혼 때보다 16%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우리나라를 제외한 분석 대상 33개국의 동질혼 지수는 평균 1.60배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제비뽑기 결혼 때보다 소득 분위가 동일한 부부를 60%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소득 동질혼의 범위를 넓혀서 남편과 아내의 소득 분위가 ±1분위인 경우까지 포함해도 한국의 지수는 1.09배(평균 1.44배)로 세계 최하위였다.
어떻게 봐도 한국의 '끼리끼리' 결혼은 미국·프랑스·영국·캐나다·일본 등 여타 선진국보다 드물었다는 뜻이 된다.
◇누가 누구랑 만났을까?
해당 현상의 배경을 살펴 보려면 누가 누구와 결혼했는지를 세부적으로 살펴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소득을 가장 낮은 1분위부터 가장 높은 10분위까지 나누고, 비취업자를 0분위로 상정했다. 이후 어떤 남녀가 서로 맺어졌는지를 봤다.
연구진이 제시한 표에서 대각선 방향은 완전한 동질혼이다. 서로 똑같은 소득 분위인 남녀가 끼리끼리 만난 것이다.
반면 대각선에서 멀어질 수록 이질혼이 된다. 멀면 멀수록 완전히 다른 분위의 남녀가 결혼한 경우다.
붉은색은 제비뽑기 결혼 때보다 드문 경우, 푸른색은 제비뽑기 결혼 때보다 빈번한 경우를 뜻한다.
이 표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은 초고소득층끼리 결혼이 많긴 하지만 주요국보다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10분위 남녀끼리 결혼이 한국은 제비뽑기 결혼 때의 2.2배인 반면 선진국은 3배에 달했다.
한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우세인 지점은 고소득 남성과 비취업·저소득 여성 간의 결합 그리고 저소득 남성과 중위소득 여성 간의 결합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저소득 가구 女의 경제활동 때문"
한국의 소득동질혼에 관한 연구는 그간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에 이 현상의 배경은 쉽게 알 수 없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다만 10여년 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수행한 기존 연구를 보면 한 가지 가능성이 제시돼 있다.
기존 연구는 저소득층 남성과 혼인한 여성의 취업률이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저소득 가구 여성이 높은 노동시장 불평등과 부족한 정부 지원에 대응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며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특히 저소득 가구 여성의 근로시간은 당시 길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저소득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이 장시간 일함으로써 낮은 시간 당 임금에도 중위 수준 소득을 벌고 있을 가능성을 가리킨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런 설명은 한국의 재분배 정책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미흡하다는 담론이 일반화돼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남편의 소득이 낮다면 아내가 일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먹고 살 복지가 돼 있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박 차장은 "외국에서는 남편이 저소득층이면 생계 보조금을 주니 먹고 살 수 있어 아내가 경제활동을 안 해도 되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경우 생계 유지가 불가하다는 게 기존 연구의 해석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차장은 "이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만 검증된 해석은 아니다"라며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가능성…"힘든 입시, 자녀 육아 때문?"
연구진은 저소득 가구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하다는 사실을 반대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고소득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다른 선진국 고소득 가구 여성보다 소위 바깥일에 소극적이란 해석도 가능하단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힘든 '자녀 교육'과 '육아'를 가능한 설명으로 제시했다.
박 차장은 "우리나라에서는 고소득 남성의 경우 외벌이가 많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힘든 자녀 육아나 대학 입시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고소득 남성이 저소득 여성과 결혼하면 중간소득이 되므로 좋지 않다. 자연스레 소득을 중요 기준으로 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치열한 자녀 교육 탓에 아내가 얼마나 가사·육아에 힘쓸 수 있는지가 중요하고, 여기에 경력단절 등 제도적 미비까지 더해지면서 가계 내 분업이 활성화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우리나라의 부족한 육아 지원이나 교육열을 봤을 때 설득력을 지닌다.
물론 관련 연구가 많은 미국과 달리 한국은 관련 연구가 거의 없어 특정 해석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
◇미래 세대는 다르다?…"한국, 소득 양극화 가능성"
이번 연구 결과를 두고 몇몇 사람은 고개를 갸웃한다. 주변을 보면, 대기업에서 일하는 남녀끼리 결혼하거나 전문직 부부인 경우가 아주 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이 같은 설명을 내놨다. 원래 한국은 맞벌이 거의 없다가 급증했다. 즉, 대기업 맞벌이, 전문직 부부가 없다가 많아졌기에 눈에 띄는 것이지 아직은 선진국에 비해 끼리끼리 결혼은 없는 편이라는 것이다.
또 맞벌이 증가에 주목하는 바람에 저소득 남성과 중위소득 여성 간 결합 등 쉽게 인지하지 못한 결혼 양상이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소득 동질혼은 경제 성장에 따라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그랬다. 이에 가구 간 소득 불평등은 자연스레 심화됐다.
한국도 경제성장에 따라 젊은층에서는 소득 동질혼이 강화됐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아직 관련 연구는 미비하지만, 최근에는 저출산 경향까지 짙어 '자녀 교육'이라는 외벌이 유인이 줄어들고 끼리끼리 결혼하는 세태가 기성 세대보다 일반화됐을 수 있다.
이는 미래 한국의 소득 분배를 악화시킬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약한 소득 동질혼은 가구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소득을 공유하는 효과를 통해 가구 간 소득 불평등을 낮춰 왔다. 대표적으로 저소득·비취업 남성이 중위소득 여성의 소득을 공유하고, 저소득·비취업 여성이 고소득 남성의 소득을 공유하면서 양극화를 완화하는 식이다.
하지만 한국의 동질혼 경향이 향후 다른 선진국과 비슷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동질혼 상황이 다른 나라와 비슷해진다면 계층 간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0%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스웨덴·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와 같아지면 지니계수는 15~16% 급등한다.
박 차장은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동질혼 경향이 유지될지 단언할 수 없다"며 "다른 나라의 연구를 보면, 처음에는 저소득층 가구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다가 나중에는 고소득층 가구의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졌고 그렇다면 우리도 소득 동질혼은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박 차장은 "동질혼 강화가 불평등에 불리하다고 해서 고소득층에게 비혼을 장려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우리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부분, 즉 노동시장 불평등을 줄이고 공적이전소득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