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가수 겸 배우 수지(28·본명 배수지)가 나오는 기사에 '국민호텔녀'라는 댓글을 단 것은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 이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이씨는 2015년 10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란에 '언플이 만든 거품, 그냥 국민호텔녀'라는 댓글을 올리고 같은해 12월 '영화폭망 퇴물 수지를 왜 A한테 붙임? JYP 언플 징하네'라는 댓글을 게시한 혐의(모욕)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이씨는 "댓글 내용은 연예기획사 상업성을 정당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자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 표현"이라며 "인터넷상에서 허용하는 수위를 넘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1심은 '거품', '국민호텔녀', '영화폭망', '퇴물' 등의 표현은 배씨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모욕적 언사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봤다.
1심은 "고소인이 연예인이고 인터넷 댓글이라는 범행수단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더라도 이씨가 한 표현들이 건전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1심의 판단을 뒤집고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연예인과 같은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에 대한 모욕죄 성립여부를 판단할 때는 비연예인과 같은 기준을 늘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은 "'언플(언론플레이)이 만든 거품'은 피해자 인기나 긍정적 기사가 언론플레이의 결과물로서 실체보다 과하다는 뜻으로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퇴물'이라는 표현은 모욕적 언사로 볼 수 있지만, 연예인 직업 특성상 '전성기가 지났다'는 내용을 다소 과격하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국민호텔녀'도 과거 배씨 열애설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어 이씨는 이를 기초로 '국민여동생'이라는 마케팅 구호를 사용해 비꼰 것"이라며 "'영화 폭망'도 배씨가 출연했던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사실을 거칠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특히 원심과 달리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모욕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시했다. 모욕죄가 혐오 표현에 대한 제한·규제 역할을 하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례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거품', '영화폭망', '퇴물' 등은 연예기획사 홍보방식이나 영화 실적 등 공적인 영역에 대한 비판으로, 표현이 다소 거칠더라도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민호텔녀'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댓글 내용이 공적으로 활동하는 영역과 관련된 사안인지, 지극히 사생활에 속하는 사적 영역과 관련된 사안인지에 따라 표현의 자유 인정범위를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배씨는 '국민여동생' 등의 수식어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를 받아 왔다"며 "이씨는 '호텔녀'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앞에 국민이라는 단어를 배치하고 '호텔'은 남자연예인과의 스캔들을 연상시키도록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호텔녀는 사생활을 들춰 배씨가 종전 대중에게 호소하던 청순한 이미지와 반대의 이미지를 암시하면서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법으로 비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여성 연예인인 배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모멸적인 표현으로 평가할 수 있고 정당한 비판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정당행위도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공적 사안에 관한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판례의 흐름이지만,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사적 사안과 관련한 표현이나 소수자 혐오 표현은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호텔녀라는 용어가 여성 연예인인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판결 의미를 설명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