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중학생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장기간 불법체류 상태로 지내다 병역 의무가 면제되는 나이를 넘겨 귀국했다면 병역법 위반 처벌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병역 의무자가 허가된 기간 안에 귀국하지 않으면 기간 만료 즉시 병역법 위반죄가 성립하고, 병역을 피하기 위한 목적의 국외 체류 기간에는 공소시효 정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면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1977년생인 A씨는 14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18세가 되는 해 당시 시행 중이던 병역법에 따라 병무청장으로부터 국외여행허가 및 기간연장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최종 국외여행 허가기간인 2002년 12월 31일의 15일 전까지 기간연장허가를 받지 않았다. 이후 A씨는 미국에서 장기간 불법체류 상태로 지내다 입영의무 등이 면제되는 연령을 넘어선 41세가 되는 해인 지난 2017년 4월 귀국했다.
구 병역법은 국외여행 허가를 받은 사람이 허가 기간에 귀국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기간만료 15일 전까지 기간연장허가를 받아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허가된 기간 내 귀국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이 사건은 병역을 피하기 위한 해외체류 기간을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체류한 기간'으로 보고 공소시효 정지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병역의무자로 국외여행 허가기간이 만료했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귀국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A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씨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며 면소 판결했다. A씨의 최종 국외여행 허가기간인 2002년 12월 31일이 공소시효 시작일이라고 볼 때, 검사가 기소한 2017년은 범죄행위가 종료된 이후 약 15년이 지난 것으로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A씨가 미국 출국 기간 동안 4차례에 걸쳐 기간연장 허가를 받았고, 그의 법적 귀국보증인들이 두 차례에 걸쳐 국외여행 미귀국통지서를 받은 점, 비자기간 만료 이후 학업을 중단해 비자기간 연장을 받지 못하자 불법체류 상태로 입영의무가 면제되는 36세를 넘어 귀국한 점 등을 근거로 꼽았다.
대법원은 "공소시효가 국외여행 허가 기간 만료일부터 진행하는 건 맞지만, A씨의 여러 사정을 감안하면 A씨 국외 체류 목적 중에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파기환송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