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고백 "구출된 뒤 다시... 나 자신이 징그럽다"

2022.11.07 08:10  
[파이낸셜뉴스] 이태원 참사 생존자가 상담치료를 받으며 그 과정을 기록한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지난 3일부터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빠르게 확산했다.

이 글은 이태원 참사 생존자 A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분류된 후 치료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장도 공유해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겠다"라고 권했다.

글쓴이 A씨는 첫 기록에서 주변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위와 글을 쓰게 된 연유 등을 설명했다.

그는 "압박이 갑자기 심해져 발이 (땅에) 안 닿았던 것도 맞지만, 숨쉬기가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옆 술집 난간에서 끌어주셨고, 술집에서 문을 열어줘 대피해서 잘 살아남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A씨는 "10시 40분쯤부터는 '아 살았다. 이제 그럼 술 먹고 놀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던지라 참사 생존자로 분류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자책했다. 그는 "생존자이자 PTSD 고위험 환자로 분류된 후 선생님께 '글을 쓰시는 분이니 SNS나 커뮤니티에 글로 연재하듯이 공유해 보시는 건 어떠냐'는 말을 권유받은 후 나의 이야기와 상담치료 이야기를 공유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적었다.

"아무래도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A씨의 말에 정신과 선생님은 "아니다.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게 맞다.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라고 말해줬다.

두 번째 기록에서 A씨는 사고 현장 인근의 술집과 식당 직원들 모두가 구조를 도왔는데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상인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욕하는 것을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꼈으며 원망스러운 감정이 무지막지하게 올라왔다고 밝혔다.

세 번째 기록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죄책감이라기보다는 제 자신이 좀 징그럽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고 당일 밤 10시 40분께 주변의 도움으로 구출된 후 참사를 인지하기 전까지 친구들이 건네준 술을 마시고 신나게 춤을 췄다고 했다. 그는 "그때는 몰랐다. 신나게 놀던 우리 뒤로 구급요원이 들것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는걸.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죄책감이 아니라 제 자신이 징그러운 인간인 것 같았다"고 적었다.

A씨는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술 많이 먹고 싸움이 났나 보다 생각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여자분이 생각난다. 그분의 친구분이 도와달라고 소리쳤지만 술 먹고 쓰러진 사람인가 보다 하고 그냥 왔다. CPR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던 것 같다"며 현장에서 구조를 돕지 못했던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네 번째, 다섯 번째 기록에서 A씨의 담당 선생님은 A씨가 사람이 실려나가는 것도 모르고 술 먹고 춤추고 놀았다는 것에 대해 "원래 술 먹고 노는 곳인데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또 그가 담당하고 있는 다른 환자는 그곳에서 한 시간을 넘게 CPR을 도와주다가 안면이 일그러져 팔다리가 성치 않은 분을 보고 결국 집으로 도망쳐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여섯 번째 기록에서 A씨는 같이 살아나온 친구가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이태원에 가지 않은 척 혼자 방에 들어가 울고 있다며 친구가 제발 전화상담이라도 받아주길 바란다고 썼다.

일곱 번째 기록에서는 이태원역에 추모를 다녀온 얘기가 전해졌다. "사과를 하고 싶다"는 A씨의 말에 담당 선생님은 "충분한 애도를 못하셔서 그럴 수 있다"며 추모를 다녀오라고 적극 권했다. A씨는 편지를 써 붙이고 헌화하고 두 번 절을 했다며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A씨의 상담기는 계속해서 연재되며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업데이트되고 있다. 그의 글은 많은 공감을 사며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10.29 참사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은 24시간 운영되는 정신건강 위기상담 전화 1577-0199에서 상담받을 수 있으며 거주지별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계돼 지속적인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