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러시아 병사들이 참호 속에서 지휘부 몰래 본국의 가족이나 애인,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눈 수천 건의 통화 내용을 확보해 28일 공개했다. 통화 속에서 병사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와 전쟁에 대한 환멸, 전쟁의 실상, 러시아 정부를 향한 불만 등을 털어놓았다.
병사들은 상관의 눈을 피해 몰래 가족이나 친구들과 통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정작 이 통화 내용은 우크라이나의 정보당국에 의해 모조리 녹음되고 있었다.
NYT는 러시아 병사들의 통화 감청 자료를 입수하고서 거의 2개월간 전화번호와 소셜미디어 등을 교차 점검하며 신빙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세르게이라는 이름의 병사는 모친과 친구에게 “우크라이나 공수부대와 탱크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사 니키타는 친척에게 러시아 656연대가 우크라이나군의 기습을 받아 동료 90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털어놨고, 안드레이는 331연대 2대대 전체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부친에게 전했다. 야간 투시경과 방탄조끼가 부족해 작전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도 담겼다.
한 병사는 우크라이나인의 가정집에서 찾은 LG와 삼성 TV 중 어느 것을 고향에 가져갈지 여자친구에게 물었다. 여자 친구가 그걸 어떻게 가져올 것이냐고 묻자 그는 "글쎄, 한번 생각해봐야지"라고 답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침대만 한 TV도 챙겨가더라"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정부가 부정하고 있는 민간인 학살 정황도 포착됐다. 다른 병사 세르게이는 여자친구에게 “창고를 지나가던 세 남자를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나는 살인자가 됐다”고 괴로워했다. 병사 안드레이는 술에 취한 채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우크라이나 남자에게 ‘당신을 죽이고 아무도 찾지 않는 숲에 시신을 던지겠다’고 위협했다”고 고백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식량 부족과 추위에 시달리며 사기가 떨어진 러시아 군인들의 분노는 푸틴을 향했다. 병사 예프게니는 친구에게 “10일째 건조된 전투식량만 받고 있는데 이마저도 벌써 다 먹었다”고 했다. 바딤은 부인에게 “이 망할 군인, 당장 그만둘 거다. 내 자식은 절대 군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푸틴, 언제 이 전쟁을 끝낼 건가. 엿 먹어라”고 하는 병사도 있었다.
한 병사는 어머니와 통화하며 “이곳에 파시스트라고는 없다.
한편 최근 푸틴이 내린 예비군 동원령에 대한 러시아 내 반발도 계속되고 있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이날 CBS 방송에 출연해 “예비군 30만 명을 동원한다고 해도 훈련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필요한 장비나 군사 물자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수습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