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김건희 여사가 본격적인 외부 활동에 나서면서 대통령실 내에 '전담팀'을 구성해야 한단 목소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해 폐지한 '제2부속실' 부활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일정이 있을 때만 보좌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 중이다. 공약을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인데 대통령실 입장과 여론의 괴리가 커지는 사이 김 여사의 '조용한 내조'만 사실상 백지화된 모습이다.
정치권은 사업가 출신의 김 여사가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불행'을 막을 수 있다며, 프랑스 사례를 본보기로 제시했다.
18일 정치권에서는 김 여사가 본격적으로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활동했다고 판단하는 시점으로 지난 13일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 방문을 꼽는다.
김 여사의 봉하행은 윤 대통령 없이 홀로 공식 일정을 소화한 첫 사례다. '십년 지기'인 한 대학교수와 대통령실 직원들이 김 여사를 보좌했다. 김 여사는 이날 이들과 함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후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독대했다.
다음날인 14일에는 여당인 국민의힘 4선 이상 의원들의 부인 11명과 용산 청사 인근에 있는 국방컨벤션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16일에는 서울 연희동에 있는 고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부인 이순자씨를 예방했다.
해당 일정들은 모두 언론을 통해 보도된 후 대통령실이 확인한 것들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여사는 드러난 일정 외에 비공개 일정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들의 부인을 예방하는 것이 취임 초 대통령 영부인의 통상적인 일정이더라도, 여당 의원 부인들을 초청해 오찬을 주재한 것은 김 여사가 약속한 '조용한 내조'를 넘어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재 대통령실에서 김 여사를 보좌하는 전담팀은 없다. 부속실 내 2~3명의 인원이 고유의 업무를 하다 언론 보도 등으로 김 여사 일정이 확인되면 보좌하는 시스템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여사를 제대로 보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김 여사의 '봉하행' 당시 수행 인원들을 두고 '무속인', 전 코바나콘텐츠 직원들의 대통령실 채용 등 불필요한 논란이 불거진 것도 부실한 보좌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이 대선 기간 제2부속실을 없애고, '영부인'이란 호칭도 쓰지 않겠다며 완고한 입장을 밝힐 때부터 정치권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대통령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 부인은 국가 세금으로 경호를 받는 등 최소한의 지원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부인은 경호만 받을뿐 의무나 책임, 보수 등에 대한 법적 규정은 없다. 그러나 방한한 외국 정상을 만날 때 대통령과 함께 하거나 해외 순방에 동행할 때 최소한의 지원팀이 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때마다 일종의 '제2부속실'이 설치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상시냐 임시냐의 차이다.
김 여사의 활동폭이 넓어지면서 '상시' 체제로 가야한단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조차 "조용한 내조에 집중하게 할 것인지, 공약을 파기하고 공식사과한 뒤 제2부속실을 만들어서 제대로 된 보좌 시스템을 구축하든지 윤 대통령이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의 '공약 번복'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여론전에 나선 모습이다. 하태경 의원은 라디오에서 "제2부속실 전담조직을 두지 않으면 계속 팬클럽 이야기가 나오고 개인회사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2부속실 부활을 요구했다. 김용태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해달라"며 직접적으로 제2부속실 부활을 요청했다.
대통령실은 신중한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부인으로서 안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며 "공식적인 수행, 비서팀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혼자다닐 수도 없다. 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뉴스1과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했지만 당분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지금처럼 김 여사의 일정이 있을 때 부속실 직원들이 보좌하는 형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와 비슷한 브리지트 여사…마크롱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했나
김 여사는 역대 대통령 영부인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 2007년 설립한 전시기획사 코바나콘텐츠를 운영한 사업가 출신이란 점과 윤 대통령과 사이에 자녀가 없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외모와 패션에서 고정관념으로 박힌 대통령 영부인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김 여사를 지지하는 팬덤과 비판하는 안티가 공존하는 대통령 영부인도 헌정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김 여사와 비슷한 상황은 외국에서 찾을 수 있는 데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와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의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유명하다. 브루니 여사와 브리지트 여사는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로 꼽힐 만큼, 누군가에겐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영부인'으로 통한다. 대통령실이 향후 어떤 보좌 '모델'을 선택할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프랑스의 사례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브리지트 여사는 지난 2017년 중순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김 여사처럼 여론의 중심에 선 바 있다.
브리지트 여사는 마크롱 대통령보다 24살 연상으로, 두 사람은 마크롱 대통령이 고등학생 시절 같은 학교 사제 지간으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10여년의 사랑을 이어온 두 사람은 지난 2007년 결혼 당시 많은 관심을 받았다.
10년 후 마크롱이 처음으로 대선에 출마하자 프랑스 여론은 브리지트 여사가 남편과 3명의 자녀를 둔 기혼자이자 선생으로서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프레임으로 두 사람을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여론의 비판에도 아내를 끝까지 보호했고, 대선 공약으로 '퍼스트 레이디'란 공식 직함을 부여하고 예산을 책정해 브리지트 여사의 능력을 프랑스의 발전에 활용하겠다며 논란에 정면으로 맞섰다.
브리지트 여사도 대선 기간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영부인으로서 프랑스 교육개혁과 청년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후 프랑스 여론은 "선출직도 아닌 대통령 부인에게 별도의 예산은 필요 없다"는 비판을 거두지 않았다.
지지율이 떨어지던 마크롱 대통령은 여론을 수용해 공약을 거둬들였지만 '투명성 헌장'(charte de transparence)을 내놓으며 '영부인'으로서 일정 부분 역할을 보장했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영부인의 역할이 이때 정해졌다.
엘리제궁은 "브리지트 여사는 국제 회의나 정상회담에 참가해 대통령 옆에서 프랑스를 대표할 것"이라며 "엘리제궁에서 회의를 주재할 수도 있고 이밖에 자선활동과 교육, 장애인, 건강, 아동 보호 분야에서 일하는 기관들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브리지트를 위해 일하는 대통령실 보좌관 2명은 (별도의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대통령 보좌관 예산에서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엘리제궁 홈페이지에는 브리지트 여사를 소개하는 별도의 코너가 마련돼, 그의 출생과 직업, 공적 생활과 의무 등이 소개돼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남성이 대통령인 국가에서 영부인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공약을 무조건 지키려고 하기 보다 김 여사의 능력이나 경험 등을 윤 대통령이 관심 갖기 어려운 분야에서 펼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