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출신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 23골로 공동 1위를 차지했으나 순도 면에선 손흥민이 더 빛났다. 살라는 23골 가운데 5골을 페널티킥으로 넣었다. 손흥민은 23골 모두 필드골로 장식했다.
역대 EPL 득점왕 중 페널티킥 없이 왕관을 쓴 선수는 불가리아 출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2010~2011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우루과이 출신 루이스 수아레스(2013~2014년·리버풀), 아프리카의 흑표범 사디오 마네(2018~2019년·리버풀) 등 세 선수뿐이었다.
손흥민이 위대한 이유는 아시아 최초나 노 페널티킥 득점왕 때문만은 아니다. 손흥민은 항상 자신의 성적보다 팀 승리를 우선한다. 팀 퍼스트 정신은 23일(이하 한국시간) 노리치와의 시즌 최종 경기서 충분히 보상받았다.
살라와의 득점왕 경쟁을 의식한 손흥민은 초반부터 집요하게 노리치의 골문을 두들겼다. 그때마다 번번이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후반 들어 팀은 3-0으로 앞섰지만 정작 손흥민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살라가 울버햄튼과의 홈경기서 골을 추가했을 지도 몰랐다.
몇 차례의 유효 슈팅이 상대편 골망을 흔들지 못하자 손흥민의 표정에 절망감이 떠올랐다. 후반 20분 마침내 22호 골이 터졌다. 그의 절친 루카스 모우라의 기막힌 노룩 패스를 논스톱으로 정확히 오른쪽으로 차 넣었다.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에서 공을 잡은 모우라는 절묘한 힐킥으로 좌측 빈 공간을 확보한 손흥민에게 찔러 주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던 골을 모우라의 도움으로 가볍게 성공시켰다.
경기 후 손흥민은 “동료들이 모두 도와주었다”며 변함없이 팀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손흥민의 득점왕과 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토트넘 콘테 감독의 소감에도 팀워크가 등장했다.
콘테 감독은 “손흥민의 득점왕이 우리의 목표였다. 팀원 모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선수들 모두가 한마음이었다”고 밝혔다. 감독으로서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 그렇게 되긴 쉽지 않다.
다름슈타트를 거쳐 197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한 차범근은 초창기 골을 넣지 못해 애를 먹었다. 좀처럼 선수들이 어시스트를 해주지 않아서다. 좋은 위치를 선정해 놓아도 번번이 허공만 쳐다봐야 했다.
농구에서도 포인트가드의 도움 없이는 뛰어난 슈터가 되기 힘들다. 한박자만 늦게 공을 주어도 슛은 링을 빗나가기 십상이다. 손흥민의 22호 골이 모우라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면 23번째 골은 보란 듯 스스로 해냈다.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 이른바 ‘손흥민 존’에서 오른발로 감아 찬 공이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골키퍼 손을 피해 상단 모서리에 꽂혔다. 손흥민은 23골 가운데 오른발로 11골을 기록했다. 왼발, 오른발이 거의 반반이다. 라이벌 살라는 19골이 왼발에서 나왔다.
손흥민은 13일 리버풀과의 경기서 전반 22분 수비수의 반칙을 이끌어내 페널티킥 기회를 만들었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