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아들이 납치됐다. 현금을 준비하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 일당은 아들을 구하려면 현금을 가져오라 했다.
이들에게 속은 70대 아버지는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된 바람에 큰 위기를 모면했다.
29일 전북 전주완산경찰서에 따르면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 거주하는 A(75)씨가 보이스피싱 조직과의 통화는 지난 26일 아침이다.
“아들이 납치됐으니, 무사히 돌아가게 하려면 5000만원을 준비해 전주로 가라. 휴대전화는 절대 끊지 말고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눈앞에 캄캄해진 A씨는 앞뒤 가릴 새도 없이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그러면서 “가진 돈이라고 해봐야 2000만원짜리 적금 하나가 전부인데,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할 수 없지만, 그 돈이라도 찾아오라”고 시켰다.
마음이 급해진 A씨는 아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읍내 인근 은행으로 달려가 수표 1000만원과 현금 1000만원을 싸 들고 그들의 말에 따라 전주 삼천동으로 찾아갔다.
임실 오수에서 전주까지 30분 넘게 달려 도착한 주택가.
현장에는 한 남성이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서성이고 있었다. 이 남성에게 돈을 건넸으나 남성은 수표 1000만원을 보더니 “현금으로 바꿔오라”고 다시 지시했다.
A씨는 부랴부랴 은행으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꿨는데, 마침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돼 저절로 꺼졌다.
아들을 데리고 있는 사기 조직으로부터 연락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근처 삼천 지구대로 달려가 경찰관들에게 휴대전화 충전을 부탁했다.
충전을 기다리는 사이 A씨는 혹여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좌불안석이었다.
경찰들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느냐”며 말을 건네자 그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털어놨다.
보이스피싱에 연루됐음을 직감한 경찰관들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하고 사기 범행을 확신했다.
이에 경찰관들은 피해자를 진정 시키며 사기 범죄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일당을 검거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지구대 경찰들은 전주 완산경찰서 지원 수사관 등 5명과 약속 장소로 향하는 A씨의 뒤를 미행했다.
이번엔 현장에 태국 국적 외국인 여성 B(41)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해자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보내기 위한 송금책이었다.
A씨가 B씨에게 돈을 건네려는 순간 경찰관 5명은 일제히 현장을 덮쳐 B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피해 금액을 손에 쥔 B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유치장에 입감 시켰다. 또 앞서 피해자로부터 현금 1000만원을 챙겨 사라진 남성의 뒤를 쫓고 있다.
이승환 전주완산경찰서 삼천지구대장(55세)은 이날 파이낸셜뉴스와 통화에서 "아들하고 연결이 안 되게 (사기범이) 지속적으로 통화를 유도하면서 시간이 지나 휴대전화가 방전된 거 같다"며 "피해자가 휴대전화 충전을 위해 지구대를 찾지 않았다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을 터인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 들어올 때 일반 민원인줄 알았다, 휴대폰 충전 하겠다고 하는데 어딘가 어색하고,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때 협박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이 지구대장은 이어 "좀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직감에 직원이 대화를 하게 되었고 경기도에 있는 아들과 통화 연결을 통해 안심 시켜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꼭 잡아야 겠다는 생각에 경찰서 강력계 지원 요청했고, 잠복해서 검거하게 됐다"고 했다.
전주 완산경찰서 관계자는 “붙잡힌 태국인 여성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확인됐고, 조사 결과 11건의 범행이 더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공범 여부와 범행경위, 여죄 등을 집중 조사해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964425@fnnews.com 김도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