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고독사예방법)은 극단선택·병사 등으로 홀로 임종을 맞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시신이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라고 정의한다. 지난해 4월1일 고독사예방법 시행 이후에도 고독사는 잇따르고 있다.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이승환 기자 = 소주 빈 병 10여개가 현관 신발장에 놓여 있다. 그 옆 좁은 공간은 소주 20병씩 든 박스 세 짝이 차지하고 있다. 담배꽁초가 수북한 종이컵도 보였다. 배달 조끼와 안전모가 벽에 걸려 있고 잔고 '0원'이 찍힌 통장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이달 초 A씨(40대)가 사망 후 발견됐던 당시 집안 모습이다. 그가 극단선택으로 숨을 거둔 지 닷새 정도 지났을 때였다. 인천 부평구의 한 다세대 주택 원룸(19.8㎡·6평)에서 A씨는 홀로 살았다.
그의 고독사 현장을 정리한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 김현섭 대표(40)는 "40대 이상 중장년층 고독사가 참으로 많은 것 같다"며 "이들 대다수가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자체 지원' 안내문 붙었지만…
지난달 초 서울 광진구에서도 중장년 남성 B씨(64)가 숨진 지 4~5일 만에 발견됐다. 그가 살던 16.5~19.8㎡(5~6평) 규모의 원룸에서였다. 이곳은 지하 주차장 일부를 개조한 공간이었다.
방안에는 약봉지가 쌓여 있었다. 냉장고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가 작업을 위해 B씨의 집을 방문했을 당시 냉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48)는 "고독사 특수청소 의뢰건 가운데 중장년층의 고독사 비율이 80%에 달할 정도다"며 "이혼 후 혼자 살다가 사망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복지재단이 펴낸 '서울시 고독사 위험계층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2020년 서울에서 발생한 고독사 51건의 절반 이상인 28건(54.9%)이 40~64세 중장년층 고독사였다.
서울시 장제급여(장례비용) 수급자 6697명 가운데 고독사 위험계층은 978명이었는데 위험계층 중 50대 비율(19.3%)이 60대(27.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평균 수명 연령이 높아지면서 중장년은 '한창 일할 나이'로 꼽힌다. 이들은 노동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지자체 지원에서 소외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나 지자체의 고독사 지원은 65세 이상 노년층에 초점을 맞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대상자는 65세 이상이거나 월소득이 1인 가구 중위소득(180만~190만원)의 35%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단순 노무직 일당이 12만원선이다. 한 달에 5~6차례만 노동해도 수급 기준을 초과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한창 일할 나이…머나먼 '65세'
50대 남성 C씨는 지난해 하반기 서울시의 고독사 예방 사업 대상에서 제외됐다. 평소 가족과 연락을 하며 지냈고 중위소득 이상의 수입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C씨는 이달 초 서울 동작구의 한 원룸에서 사망 후 최대 일주일 만에 발견됐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중장년층의 경우 건강이 좋지 않거나 심리·정서적으로 어렵더라도 최극단 상황에 이를 때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공적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송 연구위원은 "지난해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고 의료비나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긴급지원제도가 새로 마련됐으나, 여전히 중장년층 지원이 연결되는 방안은 매우 간헐적이고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중장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인공지능(AI) 관리 서비스를 도입했다. AI가 고독사 위험군에 전화해 안부를 확인하고 식사·운동 등 생활 습관을 관리하는 서비스다.
그러나 고독사 위험군이 공적인 지원체계나 이웃과의 관계망을 형성하지 않았다면 이 서비스 역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 관계망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며 "여기에 심리·정서적 문제, 알코올 중독 문제 등까지 겹친다면 중장년 1인 가구는 고독사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원 거부하고 '두문불출'
중장년 남성의 경우 지원을 거부하고 두문불출하다가 홀로 숨지는 경우가 두드러진 만큼 사전 예방 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복지재단이 관련 사례를 분석한 결과 중장년 남성이거나 공적지원 경험이 없을수록 공적·사적 지원 거부의 횟수와 강도가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대부분은 "나는 아직 괜찮다.
송인주 연구위원은 "고립된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을 증명하지 않아도 동네를 걷는 과정에서 이들의 처지를 파악하는 지역사랑방 서비스가 마련돼야 한다"며 "공공에서 지역사랑방을 만들고 민간에서 운영해 다양한 정보와 지역사회 서비스, 관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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