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가혹행위로 드러난 병사의 극단선택, 40년 만에..

진실이 밝혀져셔 다행이다

2021.04.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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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선임하사의 가혹행위로 군 복무 중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의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약 40년 만에 보훈급여를 지급받게 됐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8부(부장판사 장석조 김길량 김용민)는 A씨의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보훈급여금, 위자료 등을 포함해 약 2억8266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1983년 8월 육군에 입대한 A씨는 군단 군견병, 비무방지대 감시초소(GP) 등을 거쳐 근무하던 중 1985년 6월 수류탄 1발로 자폭해 사망에 이르게 됐다.

당시 군수사기관은 "A씨의 자살 원인은 '아버지의 잦은 주벽으로 인한 가정불화와 장기간 GP 근무로 인한 회의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몇십년 뒤 A씨 유족의 요청에 따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관련자들에 대한 재조사를 진행했다.

2019년 9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결과 등을 바탕으로 "선임하사의 지속적인 구타, 폭언 등 가혹행위가 A씨의 자해 사망에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발표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국방부장관에게 A씨의 사망 구분에 관한 사항을 순직으로 재심사할 것을 요구했고, A씨는 같은해 11월 순직으로 인정됐다.

한달 뒤 A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부 측을 상대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보훈급여 등을 포함해 총 3억2266만원을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과정에서 유족 측 변호인은 "군수사기관은 가정불화와 삶에 대한 회의감이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라는 조사결과만을 발표해,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수없게 했다"며 "군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로 유족들은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변호인은 "군수사기관의 부실수사는 1985년에 발생했으므로, 소멸시효(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가 이미 지났다"고 반박했다. 판례상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은 5년이므로, 1990년 안에는 소송을 냈어야 한다는 취지다.

1심은 "소멸시효를 세는 시작 1985년이 아닌 2019년 9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유족들로서는 2019년 9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 후 A씨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의 사망과 관련한 진상이 규명된 경위, A씨가 사망한 이후 정확한 사인이 밝혀질 때 까지 걸린 기간 등을 고려해 1인당 10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1심은 "A씨의 사망과 직무수행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다"며 "군수사기관에서 사망원인을 제대로 알려줬다고 할지라도, 유족들이 보훈급여를 제대로 수급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2심은 "당시 군 수사기관은 A씨의 선임의 구타 및 가혹행위 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축소·은폐하려고 하거나, A씨의 사망 동기나 원인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며 "심지어 관물함에 있던 A씨의 유서는 군 헌병대에 제출이 되지도 않았고, 누군가 없애 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군 수사기관의 부실수사는 현저히 불합리하며, 논리상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며 "A씨의 유족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지 못하고, 정당한 위로와 보상을 받지 못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A씨는 군인으로서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것으로 구 국가유공자법이 정한 순직군경의 요건에 해당한다"며 "유족들 역시 법령에 따라 보험급여금의 수급권자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