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뉴스1) 김정호 기자 = 코로나19로 인해 일이 끊겨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던 다문화가정의 할머니와 손주 2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31일 오전 3시5분쯤 강원 원주 명륜동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났다.
불이 난 곳은 철거를 앞둔 20여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원동남산재개발지역이다.
이러다 보니 소방차 12대와 소방관 35명이 출동했지만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인접한 이웃 집으로 옮겨 붙었다.
그 안에는 필리핀 국적의 A씨(70·여)와 그의 딸인 B씨(35·필리핀), 손녀(9), 손자(8) 등 4명이 한 방에서 자고 있었다.
B씨는 이웃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창문을 통해 가까스로 집밖으로 나왔다.
이어 주민들과 함께 다른 가족을 구조하려 했으나 집은 순식간에 화마에 뒤덮혔다.
B씨는 대피하는 과정에서 여러 곳에 화상을 입고 연기까지 마셔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 어려운 상태였다.
결국 어머니 A씨와 자녀들은 거센 화염 속에서 미쳐 빠져나오지 못했다.
불은 1시간 20여분만에 꺼졌고 이들은 숨진 채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B씨는 하룻밤 사이 노모와 자식들을 잃은 충격과 슬픔에 빠져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A씨는 지난해 딸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들의 어머니가 말을 거의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며 “정신적 충격이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씨의 가정은 코로나19로 생계 곤란을 겪고 있던 중 참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플라스틱 공장에 다녔던 B씨는 코로나19로 여파로 수개월 전 실직을 했다.
이후부터는 중국에서 용접일을 하고 있는 남편의 수입에만 의존해 다섯식구가 살아가고 있었다.
승봉혁 원주경찰서 형사과장은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며 “다문화센터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연계해 줄 계획이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B씨의 이웃인 60대 남성의 집안에 있던 석유난로에서 최초 불이 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감식 할 예정이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