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서울 동작구와 광진구 등에 아파트 3채를 보유하며 정작 본인은 월세를 살고 있는 김모(54) 씨는 이번 종합부동산세를 1000만원 가까이 통지받았다. 기존 집들의 시세는 총합 34억원 정도다. 김모씨는 "세금을 내기 위해서라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겠다"라며 "현재 전세계약이 만료되면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해 종부세를 충당하겠다"고 말했다.
종합부동산세 폭탄을 맞은 집주인들이 임차인에게 세금을 전가하려는 움직임이 현실화되고 있다. 기존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임차인에게는 적용할 수 없지만, 신규 계약을 통해서는 전가가 가능해서다. 전문가들은 전·월세 전환과 인상 속도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26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종부세 고지서가 발송된 지난 23일 이후 증가세로 전환했다. 지난 23일 4만4622건에서 사흘 새 4만5208건으로 586건이 늘어난 것이다. 그중에서도 월세 매물은 같은 기간 1만1535건에서 1만1831건으로 296건이 늘며 매물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중계업계에선 이 같은 월세 매물 증가를 임대차 2법과 종부세 폭탄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집을 구하려는 수요는 여전한 반면 매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월세 전환을 하려는 집주인들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는 이유에서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기존 계약을 하고 있는 임대인은 힘들겠지만 기존 계약이 만료된 임대인은 월세로 돌리려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임대차 2법 시행 이후에도 월세와 반전세가 크게 늘었는데, 이번 종부세도 상대적 약자인 임차인들에게 전가될 개연성이 아주 농후하다"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 같은 논의가 활발하다.
신축 대단지에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한 다주택자는 "현 시세 8억8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신혼부부에게 보증금 3억2000만원으로 전세를 놨는데 종부세를 받고 보니 세금 부담이 너무 크다"며 "어쩔 수 없이 다음에 세입자를 내보내고 반전세로 가면서 월세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33평 전세 보증금 3억8000만원을 받고 있는데, 전세가 워낙 많이 올라 갱신 기간이 끝나면 반전세로 보증금 3억8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을 받을 수 있어 이걸로 종부세를 내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흘새 월세 매물이 137건에서 162건으로 18.2%나 늘어난 강남구 논현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최근 임대차 2법과 종부세 때문에 화를 많이 낸다"라며 "신학기를 대비해 학부모들이 이사를 많이 하는 시즌이다 보니 월세로 종부세를 전가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가 더욱 확산되고 그 속도도 빨라질 거라 전망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2법이 시행되며 공급은 부족하고 전셋값은 치솟는 터라 종부세 전가는 더욱 성행할 것"이라며 "월세가 활성화된 외국에서는 이미 열쇠 대금과 관리비 명분으로 추가 금액을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돼고 있다"고 말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