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정혜민 기자 = 흔히 "조폭(조직폭력배)은 손 안 대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조폭도 꺼리는 '불법'이 있다. 마약이다. 마약에 빠진 조폭은 조직에서 신임을 얻기 어렵다. 이는 음지에서 통용되는 공공연한 얘기다.
"그 조폭조차 마약을 한다고 하면 조직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양아치 취급을 받습니다. 마약은 그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이주만 경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 계장은 지난 3일 서대문구 미근동 청사 수사회의실에서 이같이 말했다.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전국 시·도 지방경찰청 18곳과 경찰서 255곳을 총괄 지휘하는 경찰청에서 그는 3년째 마약류 범죄를 들여다보고 있다.
◇마약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이주만 계장은 국내에서도 합법화 필요성이 간간이 제기되는 '대마초'를 예로 제시하며 "위험하다"고 단언했다. 보편적인 마약류인 대마초가 술이나 담배보다 중독성이 낮다는 속설에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유명 힙합 경연대회에 나왔던 래퍼들이 대마초를 옹호해 더 그런 얘기가 나오는데 '징검다리 가설'이란 게 있습니다. 필로폰·헤로인 등 강력한 마약을 했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마초' 같은 경성 마약을 한 것으로 나타났죠. 대마초를 하다가 중독돼 더 위험하고 강한 마약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견해도 내놨다. "네덜란드가 대마초를 합법화했다고 하는데,아예 전면적으로 마약을 합법화한 나라는 거의 없다"고 운을 뗐다.
"북미 유럽에 속한 나라 중 대마초를 '합법화'한 국가도 대마가 나쁘지 않거나 중독성이 없어서가 그런 게 아닙니다. 그 나라에 이미 대마초가 깔려 대중화돼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마초는 통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 감수성에 비춰 대마초 합법화·비범죄화는 시기상조입니다
마약사범은 "우리는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본인의 건강과 일상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성범죄나 폭행, 살인처럼 타인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범죄라는 것이다. 일부 수사관들도 "마약은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부른다.
그러나 마약흡입 상태로 타인에게 해를 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다. 50대 A씨는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고속버스 택배를 통해 산 필로폰 약 0.35g을 자신의 사무실 화장실에서 3차례 투약했다.
이른바 '히로뽕'으로 불리는 필로폰은 각성증세가 심각해 마약사범들도 "한 번 손대면 인생이 끝날 수 있다"고 혀를 내두르는 마약류다. A씨는 필로폰 약 0.05g을 물에 타서 마신 뒤 구리시에서 노원구까지 4㎞가량 면허 없이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돼 최근 법원에서 징역 1년8개월과 추징금 28만8700원을 선고받았다.
◇마약사범 가운데 무직 4972명
마약류을 둘러싼 오해는 하나 더 있다. 재력가 자제 등 물질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이 마약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 부산에서 검거된 피의자는 포르쉐 차량을 운전했다. 그는 포르쉐 안에서 합성 대마를 흡인한 후 해운대구에서 차를 몰다가 9중 추돌사고를 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범죄'까지 살펴보면 '여유롭지 않은 사람'이 마약의 유혹에 더 취약하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파악된 마약사범 가운데 무직이 4972명(31%)으로 가장 많았다. 학력별로는 고졸 이하가 53.3%나 됐다. 고졸 37.1%, 중졸 14.2%였다.
범죄 원인으로는 중독(25.3%), 호기심(15.4%), 유혹(12.7%) 순으로 집계됐다. 이 계장은 "재범률이 높아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마약류 재범률은 약 37%에 달한다. 전체 마약류 사범 1만2613명 가운데 4622명이 다시 마약류의 늪에 빠진 셈이다.
이 계장은 "절도 재범률이 높다는데 마약류 재범률은 더 높다"며 "마약류 사범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끊게 해주는 제도가 필수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약을 치료하고 재활하는 데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기관 간 공조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계장은 "마약 단속하는 기관으로 경찰과 국정원, 관세청이 있고 재발방지나 예방교육 및 관련 사업을 하는 기관으로는 교육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있다"며 "이들 기관 간 공조가 잘 이뤄져야 전체 마약 범죄를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크웹 '주시'…"마약 수사 위상 높아져"
그는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서 마약류 유통이 활개치는 점을 언급하며 우려감도 드러냈다. 대표적으로 '텔레그램'이 있다. '박사방', 'n번방' 사건이 발생한 모바일 SNS다. 텔레그램 비밀거래방에는 '위드', '떨' 등 대마초 은어를 사용하며 구매자를 모집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비밀대화로 거래장소를 정한 뒤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주고받는다. 던지기 수법이란 화장실·휴지통 등 사람들이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판매자가 마약을 던지고 구매자가 이를 재빨리 찾아가는 것이다.
이 계장은 "SNS, 특히 다크웹(비밀 웹사이트) 수사에 초점을 두고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지방경찰청과 경기남부경찰청을 비롯한 지방청 3곳에서 전문수사팀을 운영해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계장은 "제가 잘했다기보다 일선 수사관들이 정말 많이 노력해줘 경찰의 마약 수사도 인정 받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일선 경찰관들이 사명감과 자신감을 갖고 일한 덕분에 예산과 인력이 예년보다 늘어나는 등 조직 내 마약 수사 기능의 위상이 높아졌다"며 다크웹 마약류 검거 의지를 피력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