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연봉 6500만원 김 대리, 귀농 3년차에 버는 돈이..

귀농에 대해 알아봐야 할듯요~

2020.09.26 09:00  
전북 진안군 마령면의 한 비닐하우스. 김은호 바른농작 대표가 방금 수확한 어린잎을 들어 보이고 있다.2020.9.25 /© 뉴스1 이지선 기자


김은호 바른농작 대표는 올해로 귀농 3년차를 맞이했다. 올해는 제2농장을 마련해 총 19동의 비닐하우스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2020.9.25 /© 뉴스1 이지선 기자


진안군 마령면에 위치한 바른농작 시설 앞에서 김은호 대표가 트랙터를 타고 있다. 트랙터는 김은호 대표가 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장비 중 하나다. 귀농은 아직 3년차지만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기계를 다루는 일에 능숙하다.2020.9.25 /© 뉴스1 이지선 기자


김은호 바른농작 대표는 매일 비닐하우스 한 동을 수확한다. 그는 빠르게 자라는 어린잎채소의 특성상 매일 씨를 뿌리고 매일 수확을 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020.9.25 /© 뉴스1 이지선기자


(진안=뉴스1) 이지선 기자 = "바르게 키운 자연의 걸작을 선사합니다."

짙은 녹색 바탕 명함에 적힌 한 줄의 포부. 절기상 추분의 언저리에서 김은호(41) 바른농작㈜ 대표를 만났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 그야말로 수확의 계절 가을의 길목이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파란 가을 하늘 햇살 아래 펼쳐진 논에는 알알이 노랗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였다. 그 너른 들판 가운데 김은호 대표의 비닐하우스 13동이 돋아올린 흙 위로 나란히 서있다. 비닐하우스 뒤로는 쫑긋 솟은 마이산 봉우리가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경치가 참 좋죠." 수채화 같은 풍광에 감탄하고 있는 기자에게 그가 명함을 건넸다. 자신을 귀농 3년차라고 소개하는 김은호 대표는 소년마냥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북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그가 3년 전 난생 처음 이곳을 찾게 된 이유와 어느새 억대 연봉 농부가 돼 평생을 이곳에서 살기로 다짐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서울과 해외를 오가던 청년 직장인

김은호 대표는 한양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대생 출신이다. 기술을 배운 그의 첫 직장은 서울의 한 제지회사. 이십대의 대부분을 그 곳에서 보내다 스물 아홉이 되던 해 GS건설로 이직했다. 해외 플랜트 사업팀에 들어간 까닭에 핀란드와 노르웨이, 독일 등지에서 4~5년을 지냈다.

그러던 중 경기도 김포에 열병합 발전 시설을 하나 지은 것을 계기로 김포시설관리공단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공기업이 안정적일 것이란 생각에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입사를 했다. 한국 나이로 35세, 삼십대의 중턱이었다.

◇ '아는 형님' 따라 우연히 간 박람회…"이거 괜찮겠다"

공기업의 김 대리가 된 그에게 주어진 일은 민원성 업무였다. '이럴려고 들어온 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쉽게 관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직을 앞둔 '사무실 형님'이 인생 2막을 준비하겠다며 어딘가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열리는 귀농귀촌 박람회였다.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사이인데다 연세도 있으신 분의 '혼자 가기 뻘쭘하다'는 말에 알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우연히 귀농을 접하게 된 그는 집에서 받아온 팸플릿을 유심히 살펴보고, 마음을 점차 굳혔다.

김 대표는 "오히려 그 때 함께 가달라고 하셨던 형님은 결국 귀농을 하지 않으셨다"며 "가끔 여기 진안 농장에 오셔서 대신 힐링만 하고 가신다"고 웃으며 말했다.


◇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와 안정적인 농사를 만나다

귀농을 결심한 후부터는 적극적으로 이곳 저곳에서 정보를 얻었다.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귀농에 필요한 기초교육을 수료했고, 실제로 농사를 배우기 위해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2030 청년귀농 장기교육에 지원했다.

6개월 가량 농업법인에서 진행되는 청년귀농 장기교육은 농산물 생산과 유통 등 농업에 대한 모든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여러 작목 가운데 김씨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어린잎채소'였다.

'1년 농사'라는 말이 두려웠기에 과일 같은 작목은 배제했다. 서울서 직장생활만 하던 초보 농사꾼에게 실패해도 금방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작물이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잎채소는 씨를 뿌리고 열흘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즉, 행여 실패하더라도 보름이면 다시 또 도전할 수 있다. 당시 어린잎채소를 배울 수 있는 농업법인은 전북 진안에 위치한 '애농' 뿐이었다. 그렇게 김씨는 진안으로 내려오게 됐다.

◇ 천춘진 박사와의 만남…진안에 뿌리를 내리다

서울서 살던 집까지 정리한 김씨는 어린잎채소를 생산·판매하는 진안의 영농조합법인 '애농'에서 먹고 자며 농사를 배웠다.

김씨의 고향은 충남 부여군의 시골 마을. 어린 시절 작은 텃밭을 일구시던 할머니 손에 자란 그에게 흙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직접 짓는 농사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김씨는 애농 대표인 천춘진 박사를 멘토로 삼았다.

천춘진 박사는 국내 최초로 어린잎 채소를 상업적으로 재배한 전문 농업경영인이다. 일본 도쿄농업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유기농자재를 개발하는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천 박사는 2004년 고향인 진안으로 귀농해 어린잎채소를 키웠다.

당시 퇴직금 800만원을 투자해 설립한 애농은 현재 농산물 판매와 가공, 농촌체험 등 6차산업을 통해 연매출 수십억원을 올리는 튼실한 영농조합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튼실한 멘토를 만난 덕에 김은호 대표는 지금 생산하는 농산품을 모두 애농에 납품하면서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 "몸은 정말 고되지만, 마음은 스트레스가 없으니 참 좋습니다"

천 박사의 농장에서 6개월 장기교육과, 2개월 인턴을 마치면서 확신이 생긴 김씨는 근처에 11년짜리 장기임대로 땅을 구했다. 동네 어르신이 인삼농사를 짓던 땅이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온 젊은 사람에게 뭘 믿고 장기임대를 놓느냐고 완강하게 거부를 당했다.

몇 번이고 찾아가 진심을 내보인 끝에 결국 허락을 구했다. 건강한 유기농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으로 객토를 하느라 토목공사비만 3000만원이 들어갔다. 매일 한 동에 씨를 뿌리고 한 동을 수확할 계산으로 총 13동의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보온을 위해 이중 비닐하우스를 짓느라 또 1억8000만원이 들었다. 다행히 귀농귀촌 청년창업농이 되면서 후계농 자금 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13동짜리 농사를 홀로 짓다보니 몸은 힘들었지만, 요령이 붙다보니 수익은 점차 늘어났다.

동수가 많아지면 수입이 더 커진다는 생각에 아예 차로 5분거리에 있는 곳에 김씨 이름으로 된 땅을 사 6동짜리 제2농장을 마련했다. 부족한 일손은 ICT융복합지원사업을 신청해 스마트 시설로 채웠다.

처음에는 모든 게 수동이었지만 조금씩 시설을 보강하다보니 이제는 문도 자동으로 개폐되고, 온도와 습도 정도는 스마트 시설이 알아서 관리한다.

최근 김 대표의 법인 '바른농작'의 매출은 월 평균 1600만원이다. 여기서 종자 값 150만~200만원을 빼도 순수익이 1400만원 정도는 된다.

김 대표는 "처음에 뭐 모를 때는 정말 쓰러질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면서 "지금도 힘들긴 하지만 요령이 많이 붙었다. 서울에서 살 때와 가장 다른 점은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 "농사 짓는데 선을 어떻게 봐요" 했는데…결혼해서 예쁜 딸까지

김은호 대표가 서울을 등지고 내려와 얻은 것은 마음의 여유 뿐만이 아니다. 귀농 후 4살 아래의 부인을 만나 올해 봄 예쁜 딸을 품에 안았다.

그가 진안에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김씨의 성실한 모습을 지켜보던 한 지인이 대뜸 아가씨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간호일을 하는 아가씨랬다.

처음에는 "에이, 이렇게 농사 짓는 사람이 어떻게 선을 봐요. 그것도 서울서 직장생활 하는 사람이 여기까지 오려고 하겠어요"라고 거절했다.

결국 만날 운명이었을까.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두 사람은 그야말로 첫 눈에 반해 결혼에 이르렀다. 지금 김씨는 6개월이 된 딸만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나는 '딸 바보'가 됐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은호씨는 이제 주말이면 전주에 있는 처가댁에 가 장인·장모, 아내, 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안정적인 직장'에서의 치열한 삶을 버리고나니 가족과 함께하는, 마음 넉넉한 삶이 시작됐다.


◇ 50년 살 전원주택 짓는 중…10월에 입주

지금 김 대표는 귀농 초기에 귀농 귀촌 센터에서 정비해 둔 빈집을 받아 살고 있다. 집세는 1년에 두어번 제초작업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진안에 뿌리를 내려 터전을 일구기로 결심하면서 집을 짓기로 했다. 현재 진안군 마령면 덕천리의 한 전원 마을에 층고가 높은 집을 짓고 있는데 10월이면 입주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딸이 태어나기 전에는 여기서 같이 지냈는데, 오래된 집이다보니 갑자기 집에 불개미가 나타나서 강제 주말부부가 됐다"고 웃었다. 이어 "새 집에 들어가면 아이와 아내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며 "앞으로 50년은 살 생각으로 튼튼하게 짓고 있다"고 덧붙였다.

◇ 친구들 "촌놈 다됐구나"…앞으로 어려운 청년 농업인 돕고싶어

김 대표는 '청년 농업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나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진안 역시 청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출되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청년 농업인 지원 정책이 조금 더 보강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40대 초반의 김 대표 역시 이곳에서 어딜가나 막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골 살이에 적응하기 위해 김 대표는 진안군 체육회나 홍삼축제 봉사활동 등 각종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가끔 서울 친구들을 만나면 "너 시골 촌놈 다됐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하지만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 귀농을 적극 추천하지는 못한다. 군청이나 지역사회에서 많이 도와주기는 하지만 아직 '색안경'을 낀 이들의 시선을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농협에 융자를 받으러 가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때가 많다. 그래도 농업은 결국 미래 가장 유망한 직종이라고 믿는 그는 농업에 도전하려는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는 선배 농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김 대표는 "처음 시작하는 분들은 각자 자신에 맞는 농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내 방식과 맞는 사람이 있다면 일을 가르쳐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얼마든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사꾼보다는 농부라는 표현이 참 좋다. 농부 김은호로 불릴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면서 "농사야 말로 진짜 철밥통이다"고 앞으로 오래도록 농부로 지내고 싶다는 진심을 전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