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8년차 택배기사도 "올해 추석이 겁나요"

코로나19로 물량 업에 추석물량까지..

2020.09.10 06:01  
9월 9일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택배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 2020.9.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8월1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택배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2020.8.17/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택배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020. 9. 7/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온다예 기자 = 택배기사로 일한 지 18년차를 맞이한 김모씨(49)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택배를 날랐지만 다가오는 올해 추석이 유독 두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택배 물량이 이미 급증한 상황에서 명절까지 겹치면 하루에 처리해야 할 물량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택배 일에 정해진 퇴근시간은 없다. 하루 일이 끝나는 그 순간이 퇴근 시간"이라며 "하루에 12시간 이상은 기본으로 일하는데 추석이 다가오면 얼마나 바빠질까 생각만 해도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10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한 올해 3~8월 택배물량은 지난해 대비 30%가량 증가했다.

대책위는 9~11월 택배물량이 전년 대비 50% 폭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9~11월은 추석과 농산물 수확기가 겹쳐 1년 중 택배물량이 가장 많은 시기다.

코로나19 사태 속 택배물량 폭증으로 과로를 호소하는 택배기사들에게 다가오는 추석은 두려움 그 자체다.

김씨는 "택배기사마다 배송 구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해당 구역에 쏟아지는 택배물량은 모두 본인이 처리해야 한다. 오늘은 힘드니까 '200개만 배송해야지'라며 택배물량을 조정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물량이 폭증하는 추석연휴 기간만이라도 분류작업 인력이 투입되면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택배기사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택배기사의 주 업무인 배송과 택배물품을 배송구역 별로 나누는 택배 분류작업, 일명 '까대기'다.

김씨의 하루는 이 '까대기'로 시작된다. 매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는 김씨는 경기 남양주에 있는 물류센터에 오전 7시까지 도착해 분류작업을 시작한다.

화물차가 싣고 온 어마어마한 택배물량을 자신의 배송구역에 맞춰 분류를 시작하는데 이 작업에만 보통 5~6시간이 걸린다.

물량이 많을수록 분류작업 또한 길어진다. 길게는 9시간까지 분류작업에 매진하다보면 본격적인 배송업무를 하기도 전에 기진맥진이 된다.

김씨는 "낮 12시 이전에만 분류작업을 끝내고 배송을 시작하면 그나마 그날 일은 수월한 편"이라며 "오후 2~3시까지 분류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그땐 밤 11시 퇴근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택배노동자가 하루 13~16시간 노동시간 중 7~9시간을 택배 분류작업에 매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배송수수료를 통해 수입을 올리는 택배노동자에게 분류작업 시 주어지는 추가 수수료는 없다.

분류작업이 끝나면 택배기사의 주 업무인 배송이 시작된다. 택배기사의 일일 배송 건수는 300~400개 정도다. 숙련된 택배기사는 시간당 50~60개의 택배를 배송하는데 앉아서 점심을 먹거나 휴식을 취할 여유는 없다.

김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6일 근무를 하면서 하루에 14시간이 넘는 노동을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택배 분류작업만이라도 도와주는 이가 있다면 노동환경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와 전국택배연대노조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전까지 택배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할 것을 정부와 택배사에 요구했다.

16일까지 정부와 택배사가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21일부터 분류작업을 거부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대책위와 노조는 14~16일 전국 택배노동자를 상대로 분류작업 거부안 찬반 투표에 돌입할 예정이다.

대책위와 노조는 장시간 노동이 택배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택배 분류작업 시간만 줄여도 노동자가 과로사하는 안타까운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업무상 숨진 택배노동자 9명 중 7명이 과로에 따른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숨졌다.

대책위는 정부의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망사고까지 포함하면 과로로 숨진 택배노동자가 7명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공공기관인 우체국부터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고 민간 택배사에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할 것을 권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택배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7년에 조사한 서울 지역 택배기사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3시간22분으로, 연간 평균 노동시간으로 따지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5만명으로 추산되는 택배노동자 중 산재보험 가입자는 7000여명에 불과하다.

택배노동자들은 대부분 특수고용직이라 근로기준법에서 벗어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연차휴가나 병가도 낼 수 없다. 만약 몸이 아파 쉬게 되면 자신의 물량을 대신 배송해줄 사람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

대체배송 인력을 '용차'라 하는데 용차를 쓰게 되면 택배기사가 평소 받는 건당 배송수수료(약 700~800원)보다 많은 1100~1300원가량을 용차에 지불해야 한다. 택배기사들이 힘든 몸을 이끌고 일터에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랜 세월 택배기사로 살아온 김씨의 소원은 소박하다. 앞으로도 택배 일을 지속하겠다는 그는 "저녁 6~7시에 퇴근해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아프거나 힘들 때 잠깐의 휴식이 보장되는 삶을 원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