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대한민국은 치킨공화국이다. 전국에 3만6000개가 넘는 치킨집이 성업 중이고 전체 프랜차이즈의 20%가 '치킨'이다. 상대적으로 창업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탓에 퇴직자들이 '제2의 인생'을 꿈꾸는 공간이기도 하다. 배달대행 1순위 역시 치킨이다. 하지만 계속 오르는 치킨값은 어느덧 가볍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민간식'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특히 치열한 경쟁을 감당하지 못한 채 '대박'의 꿈이 '쪽박'으로 끝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치킨공화국의 현주소를 다각도로 조명해 봤다.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폐업 2992곳, 3년 연속 폐업률 1위"
국내 치킨집(프랜차이즈 기준)의 현주소다. 치킨집을 두고 '자영업자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치킨집이 없는 동네는 없다. 오히려 치킨집은 더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을 닫는 치킨집보다 새롭게 문을 여는 치킨집이 더 많아서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제공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문을 연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무려 3937곳에 달했다. 전체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13.97%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렇게 많이 망하는데 과연 치킨집을 개업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일까. 혹시라도 '나는 절대 망할 리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따져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치킨집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신장개업이 줄을 잇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였다. 그 이유를 한번 들여다보자.
◇"5000만원이면 나도 사장님"…분식집보다 싼 치킨집 창업
"5000만원만 있으면 나도 사장님"
너도나도 치킨집 창업에 뛰어드는 첫번째 이유다. 창업 비용만 놓고 보면 중국집이나 빵집, 카페보다 더 싸다.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망하더라도 경제적인 타격이 적다. 일종의 진입장벽이 낮은 셈이다.
12일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의 평균 창업비용은 5716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다른 외식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차리려면 최소 1억원의 '여윳돈'이 필요하다. 평균 창업비용은 Δ한식 1억486만원 Δ서양식 1억4711만원 Δ카페 1억2294만원에 달했다. 중국집도 1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도전할 수 있다.
한식점이나 파스타집을 차리는데 드는 돈의 3분의 1만 있으면 '치킨집 사장님'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심지어 치킨집은 분식집의 평균 창업비용(6401만원)보다도 800만원 가까이 싸다.
치킨집 창업 비용이 해마다 낮아지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 평균 창업비용은 2015년 6137만원에서 지난해 5716만원으로 4년 새 7%가량 하락했다. 4년새 창업비용이 400만원 넘게 싸진 것이다. 소자본 창업이 절대적으로 많은 자영업 시장에서 '값싼 초기 비용'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시장에 치킨집이 넘쳐나는데도 창업이 갈수록 쉬워지는 배경에는 치킨프랜차이즈 브랜드 간의 '출혈 경쟁'이 숨어있다. 가맹점을 끌어모을수록 본사의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여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치킨프랜차이즈 브랜드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유통 마진'(차액가맹금)으로 일으키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며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가맹점을 더 모으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3대 치킨프랜차이즈 브랜드(교촌치킨·BHC·BBQ)가 거느린 가맹점은 지난해 기준 4178곳으로 전국 치킨 가맹점 2만5188곳 중 16.5%를 점유하고 있다. 하위 80% 치킨프랜차이즈 브랜드의 가맹점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제너시스BBQ가 1636개로 가장 많고 BHC는 1469곳, 교촌치킨은 1073곳의 가맹점을 두고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치킨프랜차이즈 산업은 '누가 더 많은 가맹점을 보유했느냐'에 따라 매출 규모가 판가름 날 정도"라며 "더 많은 인프라(가맹점)를 유치하기 위해 인테리어 비용을 깎아주는 출혈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라고 묘사했다.
◇치킨집 수익률, 업계 최고 수준…인건비·배달료 올라도 '가성비 최고'
적은 창업비용에 비해 치킨집의 수익성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통계청이 지난 2017년 발표한 '경제총조사 결과로 본 프랜차이즈 가맹점 통계'에 따르면 2013~2015년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영업이익률(영업이익률/매출액)은 평균 15.6%로 전체 외식 프랜차이즈 평균치(9.03%)보다 1.7배 높았다.
시계열로 보면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영업이익률은 2013년 13.7%, 2014년 15.8%, 2015년 17.4%로 매년 1%포인트(p) 이상씩 껑충 뛰었다. 당시 치킨과 경쟁을 벌였던 피자·햄버거 가맹점의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를 맴돌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성장세다.
하지만 인건비, 원부자재 가격, 배달료 등 영업비용이 급등하면서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영업이익률은 2017년 들어 6.8%로 뚝 떨어졌다. 2014년 9600만원 수준이었던 평균 영업비용이 3년 만에 1억5000만원으로 무려 56.25% 급증한 탓이다.
2014년 평균 924만원이었던 인건비는 2017년 1082만원으로 17.1% 늘어났다. 건물 임차료는 평균 795만원에서 901만원으로 13.3% 증가했다. 특히 생닭 등 원·부자재 가격이 포함된 '기타 경비'는 7891만원에서 1억1941만원으로 51.23% 폭증했다.
주목할 점은 영업비용 증가에도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수익률은 여전히 업계 평균을 웃돌았다는 점이다.
2017년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6.8%로 떨어졌지만 햄버거(5.7%), 일식·서양식(0.55%)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성을 유지했다. 치킨보다 창업비용과 영업비용이 3배 높은 한식의 영업이익률도 6.8%로 치킨과 비슷했다.
이듬해인 2018년에는 전국 치킨 전문점 영업이익률이 10.5%로 올라 '두 자릿수 이익률'을 회복했다. 그해 전국 음식점 평균 영업이익률은 8.7%로 치킨집의 경쟁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치킨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높은 폐업률에도 높은 인기를 유지한 비결은 타 업종 대비 저렴한 비용과 높은 수익성인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시장은 '1인 1닭', '치느님'(치킨+하느님)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치킨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높고 꾸준하다"며 "짧은 기간 영업비용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도 일정한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치킨집의 '가성비'만 믿고 섣불리 창업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용희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치킨은 충성 수요층이 두꺼운 상품이지만, 국내 치킨 시장은 상당히 포화된 상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별다른 준비 없이 치킨 창업에 뛰어든다면 단기간에 폐업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치킨 전문점 3만8099곳 중 매출 5000만원 이하인 점포는 34.14%로 나타났다. 치킨집 10곳 중 3곳 이상이 1년 벌어 영업비용조차 대지 못한다는 뜻이다.
서 수석연구원은 "치킨집이 망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저렴한 창업 비용과 높은 수익성만 믿고 뛰어드는 무모함"이라며 "치밀한 상권 조사를 바탕으로 특색있는 차별화 마케팅이 없다면 치킨집 창업을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