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홍수영 기자 =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새벽 4시 제주시 산지천 일대 탐라문화광장.
술에 취한 A씨(50)가 산지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한순간에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진 A씨는 돌계단에 머리를 부딪혀 일어나지 못했다.
모두 잠든 새벽 시간인지라 캄캄한 광장에는 인적이 끊긴 상태였다. 평소 가족들과도 연락 없이 지내던 노숙인 A씨의 추락사고를 알아챌 이는 아무도 없었다.
A씨가 발견된 건 사고 발생 4시간 뒤인 오전 8시14분쯤이다. 뒤늦게 신고를 받고 119가 출동했지만 A씨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머리에 찰과상과 출혈 흔적이 있었으나 결정적 사인은 저체온증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됐다면 그의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하고 일주일째인 지난 7일 오후 탐라문화광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저녁 시간 전 동문재래시장을 오가며 광장을 지나는 도민, 산지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중국인 관광객 등. 오래전부터 산지천 일대에 자주 나타난 노숙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A씨가 굴러 추락한 계단은 조금 달라졌다.
산지천까지 내려가는 돌계단과 나무 계단 출입이 봉쇄된 것이다. 계단으로 출입하는 난간 사이의 통로에 새롭게 설치된 작은 문과 자물쇠를 볼 수 있었다. 난간과 문의 높이는 성인 남성의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정도다.
제주시는 추락사 사고가 나자 산지천으로 내려가는 계단 통행을 통제하기 위해 문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당분간 일반 시민의 통행은 어려울 전망이다.
탐라문화광장의 안전 및 활성화 문제는 조성 초기 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제주도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산지천 일대에 586억원을 들여 조성한 탐라문화광장은 완공 이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도 찾는 곳이 되었다. 2018년에는 음주청정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산지천 일대는 오랜 시간 노숙인들이 자주 출입하는 곳으로, 광장 조성 이후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이에 제주도는 탐라문화광장을 주요 현장점검 대상으로 삼고 노숙인 대상 지도점검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노숙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주지역 노숙인은 200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고와 같은 안전사고를 예방할 시설도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광장 중앙에 수심이 깊은 산지천이 흐르고 있지만 안전사고에 대비한 인명구조함은 2~3개만이 광장 중앙에 설치돼 있다.
인명구조함에는 ‘이 지역은 수심이 깊어 물놀이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는 안내판이 달려있다.
제주시 관계자는 “이번 추락사 사고로 긴급하게 산지천으로 내려가는 계단 통행을 막는 문을 설치했다”면서도 “출입을 완전 봉쇄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