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뉴스1) 박슬용 기자 = “2~3일 머리 식히고 올게.”
11년 만에 경찰청이 공개 수배를 결정한 ‘정읍 이삿짐센터 살인사건’의 피의자 성치영씨(48)가 행적을 감추기 전 부인과 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이 말과 함께 성씨는 부인에게 현금 10만원과 현금카드 1장, 양말과 속옷 등을 받고 2009년4월24일 전북 정읍 신태인역에서 가족과 헤어졌다. 이후 성씨는 자취를 감췄다.
8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성씨를 포함 20명을 2020년 상반기 공개수배 대상자로 지정했다. 경찰청은 공개수배 대상자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담긴 전단 2만장을 전국 관공서 등에 게시했다.
성씨는 지난 2009년4월20일 오후 9시께 전북 정읍시 공평동 한 이삿짐센터 사무실에서 이삿짐센터 업주 동생 이모씨(당시 37세)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읍에서 화물차 기사로 일하고 있었던 성씨는 사건 발생일인 2009년4월20일 전주지법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다. 불어난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성씨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파산이었다.
하지만 이날도 어김없이 성씨에게 빚으로 인한 독촉 전화가 걸려왔다. 이삿짐센터 대표의 동생이자 도박판의 전주(돈을 빌려주는 사람)였던 이씨였다.
파산 전날 성씨는 조금이라도 빚을 갚기 위해 도박을 했고 이 과정에서 이씨에게 50만원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성씨의 부인은 성씨의 모습과 행적이 이상했다고 진술했다.
성씨가 파산선고를 받은 뒤 정읍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20분이었다. 하지만 8시가 넘어서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돌아온 성씨의 몰골 또한 엉망이었다고 했다. 그의 옷에는 흙이 잔뜩 묻어 있었으며 손에는 상처까지 있었다고 했다.
이씨의 가족들도 이씨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이날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선 이씨가 아침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휴대폰이 꺼져 있어 연락도 안됐기 때문이다.
이씨의 형은 동생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삿짐센터 사무실을 둘러봤고 바닥 등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 이후 가족들은 이씨가 사라졌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이씨의 가족 등의 진술 등을 토대로 단순실종이 아닌 강력 사건인 것을 직감했다.
경찰은 이씨에게 전날 돈을 빌린 성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그를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성씨가 피의자라는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해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이후 경찰은 이씨의 SM3 승용차를 찾았고 차 안에서 성씨의 지문을 발견, 성씨를 재소환해 조사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성씨는 가족들에게 “머리를 식히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행적을 감춘 상태였다. 경찰은 성씨의 행적을 쫓았지만 흔적을 찾지 못해 기소 중지했다.
사건발생 5년 뒤인 2014년7월, 이씨의 시신은 사건이 발생한 이삿짐센터 사무실에서 3㎞ 떨어진 공사장 폐정화조 안에서 발견됐다. 해당 시신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좌우 늑골 10여곳에 흉기에 의해 손상된 자국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성씨가 신분을 세탁해 국내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 이후 성씨가 희귀질환인 베체트병을 앓고 있어 주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경찰은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베체트병 환자 명단을 받아 수사했다. 하지만 성씨로 의심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베체트병은 입안과 성기 등에 궤양이 발생하고, 시력을 잃을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피해자 유족은 숨진 이씨가 170㎝m, 몸무게 80㎏으로 몸집이 컸기 때문에 키 164㎝에 불과했던 성씨가 이씨를 쉽게 제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이 때문에 공범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가 장기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며 “성씨와 관련된 사건을 알고 적극적인 제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