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매일 식사를 하면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일까’ 생각한다. 살이 찌지 않으려면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을 바로 토해내야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회사동료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봐 주로 공중 화장실을 찾지만 여건이 안 되면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주말엔 친한 친구의 손등 상처를 발견하고 내심 반가움을 느꼈다. 토를 하면서 손에 생긴 자신의 상처와 같은 부위였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B양은 온라인 ‘프로아나(거식증(anorexia)을 지지한다(pro)는 뜻의 합성어)‘ 커뮤니티에서 살 빼는 정보를 공유한다. 최근에는 ’먹토(먹고 토하기) 꿀팁‘글을 보며 목에 덜 무리를 주며 토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이상 행동이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프로아나 한 후 75kg에서 56kg됐어요. 19kg 뺐네요’라는 글을 보며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진다.
A씨와 B양의 이야기는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사례를 모아 꾸며 쓴 이야기다. 이들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우리 주변의 인물일 수도 있다.
각 커뮤니티의 자유게시판에는 ‘남자친구가 제 쉰 목소리 듣고 먹토하냐고 물어보네요. 아니라고 잡아뗐는데 들킨 걸까요?’, ‘밤 11시마다 옆집 사는 남자가 토하는 소리가 들려요. 정상체중이던데... 거식증인걸까요?’ 등 식이장애와 관련된 글이 올라와있다.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고 뱉기)’등의 식이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SNS 등을 통해 고충을 이야기 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토를 반복적으로 하면 손등에 상처가 남는데, 이를 사진으로 찍어 ‘먹토 인증’을 하기도 한다.
■정상체중에게 많은 ‘대식증’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식이장애의 양상이 바뀌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과거에는 먹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식욕이 없는 저체중의 사람만을 거식증으로 보고 문제 삼았지만 지금은 정상체중의 ‘대식증’이 만연한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신경성 대식증’은 높은 식욕으로 다량의 음식물을 빠르게 섭취한 후 구토하거나 설사약을 먹어 관장을 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이다. 치과 질환, 식도 외상, 급성 위 확장 등의 합병증과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만든 병”
나 교수는 “식이장애는 정신질환 중 가장 치료가 어려운 질환으로도 여겨진다”며 “낮은 자존감 등 마음의 불안증을 해결하며 충동을 조절해야하기 때문에 약물 치료 뿐 아니라 많은 상담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식이장애의 이유를 주로 개인적인 데에서 찾았지만 현대 사회의 식이장애는 사회·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나 교수는 “말라야 한다는 사회의 인식과 온라인에서 이상행동을 하나의 문화처럼 공유하는 현상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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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kyung@fnnews.com 전민경 인턴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