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애들도 있다는 것 같은데…살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마음이 안좋네."
3일 오전 서울 성북구에서만 60년 살았다는 정모씨(76)는 성북동 언덕에서 기자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주말을 맞아 교회를 간다는 그는 전날 경찰들이 다녀간 모녀 일가족 사망 사건 현장을 지나면서 "도둑이나 폭행 시비도 없는 한적한 마을의 참변"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서울 성북동 다가구 주택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관리인 신고로 출동한 당시 경찰은 이 다가구 주택 2층에 살던 70대 여성과 40대 여성 3명이 숨진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모녀지간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어제 경찰이 문을 연 직후부터 악취가 나기 시작했어요. 건물 내 온 가구에 냄새가 퍼져서 잠도 제대로 못잤네요." 바로 옆집에 살던 오모씨(47)는 전날 발견 당시를 이렇게 전했다. 그는 숨진 일가족과 비슷한 2017년 중순 해당 건물에 입주했다.
데면데면했지만 서로 고개 인사 정도 하고 지내는 사이였던 일가족이 자취를 감춘 것은 1달여 전. "아기 울음 소리나 남성 목소리도 들은 적 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오씨는 "평소 40대 여성들의 안색이 의기소침하고 얼굴도 그리 밝지는 않았다"는 부인의 말도 함께 전했다.
일대에 살던 주민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성북동에서도 부촌으로 분류되는 북악산 자락은 아니지만 햇살이 따뜻하고 언덕이 완만한 편에 속하는 위치인 탓에 사건, 사고 없이 정겨웠던 동네에서 어떤 이유로 이런 변이 벌어진 지 모르겠다는 태도다. 현장 바로 앞에서 설치미술관과 사진관을 운영하는 A씨는 "폐쇄회로(CC)TV도 많고 안락한 동네에서 의외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고가 난 가구를 제외한 7곳 가구는 냄새 때문에 모두 집을 비운 상태다. 건물 외부까지 악취가 진동한 탓이다. 내부 청소 도중 잠시 짐을 챙기러 들어온 한 주민은 "앞으로 (악취가 빠지는 데) 한 10~20일은 걸릴 것 같다"며 담배를 연거푸 피우더니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인근을 지나던 30대 김모씨도 "이게 무슨 냄새야"리며 기다리던 마을 버스에 올랐다.
사고 가구는 경찰의 통제로 출입이 차단된 상태였으나 정문 앞에는 발효유 배달 안내문이 붙어있었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발코니(베란다)에는 미처 다 쓰지 못한 섬유유연제와 샴푸 등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일가족의 시신은 부패가 심해 사망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A4 용지 1장짜리 유서를 발견됐으며 외부로주터의 침입 흔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서에는 생활고와 관련된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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