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목동 빗물터널 참변..여전한 안전불감증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렇게 허술했다니

2019.07.31 21:39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3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근로자 3명이 고립된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수색 구조작업에 나선 구조대원들이 크레인을 타고 사고 현장을 나오고 있다. 2019.7.3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 31일 오전 서울 목동에 위치한 신월 빗물펌프장 내 지하 배수터널에 투입된 인부 3명이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자동개폐 수문이 열리며 쏟아진 물에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협력업체 소속 구모씨(65)가 숨지고 현대건설 소속 직원 안모씨(29)와 협력업체 소속 미얀마 국적의 M씨(23)는 이날 오후 9시까지 실종 상태다.

아직 명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주처인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와 시공사인 현대건설, 관리 주체인 양천구는 이날 이뤄진 두 차례의 합동 브리핑에서 서로의 탓만 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소방당국과 서울시, 시공사 등의 브리핑을 종합하면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는 이렇다. 오전 7시10분 당시 비가 내리지 않아 일상 점검을 위해 협력업체 인부 2명이 지하 터널에 먼저 투입됐다.

오전 7시30분 서울에 호우주의보가 발효됐고 수문 상황을 모니터링하던 양천구 관계자는 오전 7시38분 현대건설에 수문이 곧 개방될 것 같다는 전화로 알렸다. 전화를 받은 현대건설 담당자는 수문 상황을 볼 수 있는 제어실로 향했지만 비밀번호 등을 물어보는 사이 7시40분쯤 수문이 개방됐다.

일단 수문 개방예정 사실을 알린 시간이 실제 개방까지 2분 밖에 안돼 적당한 시간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건설 소속 안씨는 오전 7시50분 먼저 투입된 인부에게 수문 개방 소식을 알리러 지하 터널로 내려갔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 사고 현장은 평소에도 무전이 닿지 않아 작업장에 투입된 인부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선 인편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이날 같은 위험 상황에 대비한 비상대책은 사실상 전무했다. 작업을 위해 배수터널로 투입된 인부들의 안전장치는 머리에 쓴 안전모가 고작이었다.

이날 브리핑에서 가장 공방이 일어난 부분은 왜 어떤 곳에서도 수문을 닫지 않았느냐는 점이었다. 현대건설 측은 이와 관련해 "현대건설은 수문 개방에 아무런 제한 권한이 없고, 패스워드도 모르는 상태"라고 항변했다. 수문 개방은 양천구에 온전히 권한이 있다는 주장이다.

같은 장소에 듣고 있던 양천구 관계자는 바로 반박했다. 지금은 공사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직 양천구에 시설물이 인수인계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 지금껏 시공사 측에서 언제 지하 터널에 작업자를 투입하는지 연락받은 적도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양천구 관계자는 수위 운영에 관한 것만 양천구가 관리한다고 반박했다.

인부가 지하터널에 투입된 상황에서, 현대건설은 수문 조작 권한이 없었고 양천구는 작업자가 투입된 사실을 몰랐다는 말만 반복한 것이다. 브리핑에 참석한 한 실종자 가족은 "현대건설은 권한이 없고, 양천구는 책임이 없다고 하면 도대체 판단은 누가하느냐"며 "일단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수문이 열렸는데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냐"고 지적했지만 양천구와 현대건설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발주처인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의 경우 안에 작업자가 있고 수문이 개방된 사실을 오전 8시가 넘어서야 확인했다. 서울시와 양천구, 현대건설 사이에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이들이 공유한 것은 이날 수위가 50%에 이르면 수문이 열릴 것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이마저도 현장에 투입된 협력업체 인부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안전메뉴얼도 준공 이후 운영할 때의 매뉴얼만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장 안전 수칙은 있었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서로 협조해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매뉴얼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현대건설 최모 현장 소장은 안모 대리가 터널에 들어간 지 30분이 더 지난 오전 8시26분쯤에 서울시 관계자가 있는 단체방에 수문을 닫아달라고 요청했다.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날 오전 7시10분에 투입된 협력업체 직원 2명은 '일상점검'을 위해 들어갔다. 매일같이 하는 똑같은 일이었다. 이런 사실을 시공사 측에서 양천구와 한 번이라도 얘기를 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꼭 메뉴얼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날 브리핑에 나선 관계자들은 '절차'만을 강조했다.

양천구 관계자는 브리핑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작업자가 오전 7시쯤에 들어간 것을 얘기해 줬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쪽에서는 지금까지 작업자가 그 시간에 들어간다고 한 번도 얘기를 안 했다. 계약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