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폄훼 등 겨냥…노영민 비서실장도 靑직원들에 "색깔론 끊이지 않아" 메일
文대통령, 관료 향해서도 "정책 현실화에 속도 내야" 독려
(서울=뉴스1) 진성훈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공개회의 석상에서 정치권을 향해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냈다. 정치권 전반을 겨냥한 표현들도 없지 않지만, 사실상 자유한국당을 향한 비판으로 읽힌다.
본격적인 취임 3년차가 시작되면서 주요 국정과제 정책들의 추진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해야 한다는 판단과는 달리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 주요한 원인이 정치권에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같은 맥락에서 정부와 공직사회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정책 실패의 책임을 야당과 관료들에게 돌리는 꼴'이라는 반발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청와대 참모들인 수석 및 보좌관들과 함께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었다.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수현 정책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강기정 정무수석, 김연명 사회수석, 조국 민정수석, 이용선 사회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주형철 경제보좌관, 이공주 과학기술보좌관, 이정도 총무비서관, 고민정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이날 수보회의는 지난해 6월과 12월 두 차례에 이어 문 대통령 취임 후 3번째로 청와대 전 직원들에게 영상중계시스템을 통해 생중계됐다. 취임 2주년(5월10일)을 지나 본격적인 3년차를 맞아 청와대 안팎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생중계 방식을 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문 대통령의 이날 모두발언에서 눈에 띈 부분은 정치권을 향한 비판이었다.
문 대통령은 "세상은 크게 변화하고 있지만 정치권이 과거에 머물러 있어 매우 안타깝다"며 "촛불 이전의 모습과 이후의 모습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겨냥한 정치권의 비판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낡은 이념의 잣대는 그만 버려야 한다"며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이상, 민족의 염원, 국민의 희망을 실현하는데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이 주요 사안마다 비판해 온 점을 따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평화가 정착되고 한반도 신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는 번영의 한반도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라며 "그 희망을 향해 정치권이 한 배를 타고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노영민 비서실장도 이날 청와대 전 직원에게 내부메일로 서신을 보내 "임중도원(任重道遠). 책임은 무겁고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라며 "아직까지 냉전시대의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색깔론으로 폄훼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문 대통령과 노 실장의 언급은 지난 '하노이 담판' 결렬 이후 북미정상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내부에서 힘을 모아야 하는데, 정치권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어 서운함이 커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자유한국당은 최근 하노이 담판 결렬 및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추정 발사체 등의 잇단 발사를 계기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정은만 바라보며 북한의 위협 앞에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정치권의 극심한 대립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이 같은 정쟁으로 인해 민생 현안 논의 및 입법화가 뒤로 밀리는 데 대한 유감을 나타냈다는 분석이다.
특히 '낡은 이념의 정치',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 등의 표현은 현 정권을 '좌파 독재'로 규정하고 문 대통령을 '독재자'로 부르며 지지층 결집에 힘쓰고 있는 한국당을 향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특히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며 "막말과 험한 말로 국민 혐오를 부추기며 국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가 일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뿐"이라며 "험한 말의 경쟁이기보다 좋은 정치로 경쟁하고 정책으로 평가받는 품격 있는 정치가 이뤄지길 바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취임 3년차 시작을 맞아 정부와 공직사회를 향해서도 정책의 성과를 내기 위해 '속도'를 낼 것을 독려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자세로 다시금 각오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며 "지금까지의 노력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큰 틀을 바꾸고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데 중점을 뒀지만 성과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라며 "이제는 정책이 국민의 삶 속으로 녹아들어가 내 삶이 나아지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발표한 정책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속도를 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인식이 최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비공개로 나눈 대화에서 나타난 것과 상통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당시 이 원내대표는 김 실장에게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라고 말하자 김 정책실장이 "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모습이 방송사 마이크를 통해 외부로 전달됐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잘못된 방향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청와대만 보이고 정부는 안보인다는 문재인 정권의 실상이 벌써 이 정도"라며 "공무원이 말을 안들으면 여당 원내대표는 팔을 비틀고, 청와대는 박수칠 태세다. 이러니 '독재'란 소릴 듣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