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단에 선 제주4·3 유족 "아버지 총살 당해 대구의 한 저수지에 버려져"

"4·3이라는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다 같이 노력하자"

2019.04.01 14:20  
4·3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 유족 김필문씨 특강
"2살 때 父 행방불명…진상 규명은 자식된 도리"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제주4·3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다함께 노력합시다."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일을 이틀 앞둔 1일, 4·3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로서 제주중앙고등학교 교단에 선 김필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회장(72)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겪은 4·3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5·10 총선거 반대운동 등으로 군경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48년 김씨 가족은 군경을 피해 친척집의 작은 헛간으로 터전을 옮겨 가축사료인 밀겨로 목숨을 부지하며 살았다. 당시 김씨는 두 살배기 아기였다.

그러나 어느 날 김씨의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끌려가 제주시 건입동의 한 주정공장 창고에 감금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 형무소로 이송됐다.

김씨는 "한글을 몰랐던 아버지는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주변 사람의 손을 빌어 틈틈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 왔다"며 지난 날을 돌아봤다.

아버지의 소식이 끊긴 것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였다. 김씨는 "우리 가족은 오늘날까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을 몰라 매년 아버지 생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고개를 떨궜다.

김씨는 "(아버지는) 정부의 명령으로 총살 당해 대구의 한 저수지 등에 버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구 형무소 기록에 따르면 아버지는 445명과 함께 반공법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자신이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 대해 "제가 한 가정의 아버지를 넘어 할아버지가 됐을 정도로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는 누구의 잘잘못을 탓하는 것이 아닌 과거의 아픈 역사를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함"이라며 학생들에게 "4·3이라는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다 같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강연을 들은 진유지 학생(16·여)은 "4·3이 비극적인 역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세한 내용을 듣는 것은 처음"이라며 "다시는 4·3과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채칠성 제주중앙고 교장은 "학생들이 역사의 진실을 바로 알도록 학교에서부터 참교육을 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4·3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제주도교육청은 올해 김씨를 비롯해 4·3 희생자 유족 38명을 4·3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로 위촉했다. 이들은 올 상반기 도내 학교에서 특별강연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이 같은 명예교사제는 올해로 시행 5년째를 맞았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