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못하게 적극회유…"기간 길수록 피해회복 어려워"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지난해 7월부터 불거진 '150조원 보물선' 돈스코이호 투자사기 사건 주동자 류승진씨(44)가 계속해서 사기 범행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베트남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류씨는 새로운 인물을 꾸준히 섭외하면서 사람들의 투자욕구를 자극할 판을 벌이고 있다.
류씨와 공모자들은 '보물선' 대신 '금광'을 끌어들였고, '신일그룹' 대신 'SL블록체인그룹'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는 코인의 이름은 '신일골드코인'(SGC)에서 '트레져SL코인'(TSL코인)이 됐다. 경찰이 SL블록체인그룹에 대해서도 수사를 시작하자 최근에는 '유니버셜그룹'으로 법인명을 다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류씨 일당이 388명으로부터 10억여원을 끌어모은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돈스코이호 투자사기 사건 때는 2354명이 90억원가량의 피해를 입었다. 합계액이 100억원에 이른다.
경찰이 확인한 결과 이들이 이렇게 받아낸 100억원가량의 투자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또 자신이 SL블록체인그룹 회장이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송명호'는 '류승진'이라는 사실이 복수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 SL블록체인그룹 대표 이모씨(49)는 '감옥을 가면 1년에 5억원씩을 주겠다'는 류씨의 꾐에 넘어간 35년 경력의 중국집 주방장이었다.
이렇게 SL블록체인그룹의 투자사업도 결국은 류씨의 사기라는 점이 여러 정황을 통해 드러나고 있지만, 그는 돈스코이호 사건 때 의심을 산 지점을 꼼꼼히 보완하면서 피해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상당수 피해자들이 투자사기를 당하고도 이를 모르거나 부정하는 이유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돈스코이호 투자사기 사건과 SL블록체인그룹 건은 여러 면이 닮았다. SL블록체인그룹 대표와 부회장 등 5명을 지난 8일 입건한 경찰은 "최근 '유니버셜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투자광고 역시 류승진이 주도하는 사기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돈스코이호와 닮은꼴…SL블록체인그룹 관계자들 "송명호는 류승진"
'송명호는 류승진이다'
경찰이 SL블록체인그룹을 수사하면서 그룹 관계자 등 여러 공범과 참고인으로부터 확인한 내용이다. 통화내역 등 목소리를 분석한 결과도 '송명호=류승진'이었다. 또 경찰이 공범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화 내역에는 '우리 집안 분들이 누나 구속도 못 막고 뭐했냐고 난리가 아니다'는 내용이 있다. 지난해 11월 류씨의 누나인 전 신일그룹 대표 류상미씨(49)가 구속된 사실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데도 류씨는 '송명호'라는 가명을 쓰면서 SL블록체인그룹은 신일그룹 시절 돈스코이호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신일그룹 때도 '유지범'이라는 가명을 썼다. 또 과거에 수 차례 사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핵심 관계자들이 구속되며 돈스코이호 사건이 막을 내리자 신일그룹은 법인명과 사업 내용을 슬쩍 바꾸기 시작했다. 법인명은 신일그룹→신일해양기술→SL블록체인그룹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9월쯤까지도 '보물선을 반드시 인양하겠다'고 장담하다가 이내 '1000만톤 금광'으로 사업 아이템을 바꿨다. 보물선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금'을 이용해 투자자를 현혹하고 코인을 발행한다는 점에서 돈스코이호 투자사기와 SL블록체인그룹 건은 비슷하다. 돈스코이호 안에 있다는 금괴의 존재는 한번도 확인된 바 없으며, SL블록체인그룹이 내세우는 '경북 영천 1000만톤 금광' 역시 공식적으로 수익성이 검증된 바 없다.
경찰 관계자는 "SNS에 올린 해외 금광 답사 사진은 현수막만 걸고 찍은 것이고, 경북 영천에서도 사진을 찍긴 했지만 너무 초라해 올리지 않았다는 관계자 증언이 있었다"고 말했다.
◇'보물선 사기' 때 미비점 보완하는 류승진…"여전히 실체는 없다"
류씨는 돈스코이호 투자사기 사건 때의 시행착오를 학습해 점점 사기 범행을 보완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아프리카TV 별풍선 구매 참고 개발'. 류씨 측이 신일그룹 당시 웹사이트 개발자에게 의뢰한 내용이다. 암호화폐라던 신일골드코인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없었고, 코인은 '아프리카TV 별풍선' 수준의 단순 포인트에 불과했다.
TSL코인은 백서가 공개되는 등 보다 그럴듯해졌다. 지난해 9월 공개된 백서가 짜깁기 수준이라는 것이 드러나자 SL블록체인그룹은 백서를 다시 내놨다. 경찰에 따르면 이 백서는 '토큰용 백서'다. TSL코인이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암호화폐가 아니라, 기존 기술을 복사해 만든 '토큰'이기 때문이다.
SL블록체인그룹 서버를 미국에 둔 점도 실패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신일그룹 당시에는 경찰이 국내 서버를 압수수색하면서 웹사이트 이용이 정지됐던 바 있다. 이전에는 전 신일그룹 국제거래소 대표의 개인계좌로 투자금을 모았지만, 이번에는 SL블록체인그룹 명의의 법인 계좌로 투자금을 받는 등 보완된 모습이다.
하지만 이들이 홍보하는 투자사업에 실체가 없다는 점은 여전히 같다. 코인 상장을 차일피일 미룬다는 점도 과거와 비슷하다. '유니버셜그룹'이라는 이름을 단 SNS에서는 자신을 '유니버셜그룹 총회장 송명호'라고 밝힌 인물이 오는 4월30일 TSL코인을 상장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고·고소 않으면 코인 주겠다' 피해자 회유…SNS '여론관리'도
류씨는 피해자들에게 '코인을 줄 테니 신고·고소하지 말라', '신고를 하면 환불해주지 않겠다'며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금수저의 꿈을 이뤄주겠다', '조금만 기다리면 부자가 된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꾸준히 올리면서 투자자 이탈을 막고 있다. '그래서 대체 언제 상장된다는 것이냐'는 등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댓글은 삭제해 가며 관리에 힘쓰는 모양새다.
이렇다 보니 피해를 당하고도 그 사실을 모르거나 심지어 부정하는 피해자들도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투자수익을 낼 것인데 왜 그러느냐'고 도리어 경찰에게 항의하는 피해자도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SNS상에서 견고하게 범죄가 이뤄지는 경우 사기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다"며 "특히 이번 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는 경우에는 의심하기가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들에게는 투자를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의심할 만한 정황을 외면하는 확증편향 심리가 작용한다"며 "대부분의 투자사기 피해자들이 이 때문에 잘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피해 규모가 눌어나 수습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피해자들에게 '이 투자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도 "하루 빨리 피해를 신고해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베트남 공안 협력적…류승진 신병확보 힘쓸 것"
결국 계속되는 투자사기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몸통'인 류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는 해외에 머무르면서 계속해서 범행을 이어갈 인물을 섭외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 국제형사기구(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진 류씨에 대해서 베트남 현지 공안과 협조를 강화해 신병 확보에 힘쓸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지 공안에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다"며 "현지에서 신경을 많이 써 주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은 지난 8일 입건한 SL블록체인그룹 전 대표 이씨 등 5명에 대해서도 조만간 신병처리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번 돈스코이호 투자사기 사건 이후에도 범행을 지속한 데 대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TSL코인 투자 역시 보물선 투자사기와 같은 수법을 쓰는 사기 범행으로 확인됐다"며 "수사가 진행되자 상호가 '유니버셜그룹'으로 바뀐 투자광고가 나오고 있는데 이 역시 류승진이 주도하는 사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의를 재차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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