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김규빈 인턴기자 = "설연휴기간에 꼬박 하루 동안 잠도 못 자고 응급실로 밀려오는 환자 200여명을 동료들과 진료했다. 솔직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같다."
7일 서울의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A씨는 국내 응급의료센터의 노동강도를 이같이 표현했다. 그는 "평소 100명 내외이던 응급환자가 이번 명절기간에 2배 많았다"며 "환자는 끝없이 밀려오는데 진료가 조금만 늦어져도 의료진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헌신해온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이 지난 4일 병원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응급의료센터의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고 윤한덕 센터장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고 피로가 장기간 누적되면서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행정업무를 위해 진료현장을 떠난 윤 센터장이 갑자기 숨지자 응급의료센터 운영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 40곳에 권역별 응급의료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컨트롤타워인 국립중앙의료원은 24시간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을 가동하고 있다. 이는 수년간 정부 예산을 투입해낸 결과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의료진의 노동력을 갉아먹는 구조라는 비판이 적지않다.
A씨는 "응급의료센터 의사들은 24시간 꼬박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방식으로 진료한다"며 "이런 노동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면 몸에 심각한 무리가 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번듯하게 건물을 올린다고 응급진료가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은퇴한 의사들을 당직의사 이름에 등록해 정부예산을 받고 소속 의료진들은 극한 노동환경으로 내모는 병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다른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별 보고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하는 게 일상"이라며 "교수직을 관두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어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에서 환자보호자로부터 얻어맞는 일도 예사"라며 "응급의료센터 업무는 정말로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의료기관들의 응급의료센터는 과밀화로 몸살을 앓은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가 2015년 발표한 '전국 415개 응급의료기관 평가결과'를 보면 중증응급환자가 수술실이나 병실로 올라가지 못하고 응급실에 머무는 시간은 최소 10시간이 넘는다.
이런 과밀화 현상은 일부 개선되고 있지만 중증외상환자와 감기환자가 뒤섞여 있는 현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환자들의 치료는 계속 늦어지고 의료진의 업무강도도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문윤수 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교수는 "닥터헬기를 도입하고 의료장비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업무강도는 나아지지 않았다"며 "정부 예산이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