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에이전시 유어썸머 이소영 대표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20년 넘게 인디 음악업계에 몸 담은 그는 소문 난 음악 마니아다. 그에게 음악은 '좋고 나쁘고'를 나눌 수 있는 기호(嗜好)의 대상이 아니다. 언제나 편들어서 감싸 주고 싶은 비호(庇護)의 상대다.
이 대표가 새로운 음악을 국내에 소개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일본 시부야케이(Shibuya-Kei)(시부야계(係))가 대표적이다. 현재 J팝 붐이 일기 전에 2000년대 초에 이미 J팝 열풍이 국내 있었는데 이 바람에 불을 지핀 이들 중 한 사람이 이 대표였다.
이 대표는 작명의 달인이기도 하다. 해피로봇 레코드, 유어썸머처럼 그림이 그려지는 낭만적인 회사 이름을 그가 지었다.
뮤지션들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제작이 아닌 홍보·마케팅에 주력하는 에이전시 개념을 도입한 회사 설립도 이 대표가 앞장섰다.
이처럼 올해 30주년을 맞은 인디업계와 이 대표는 긴밀하게 동행해왔다. 이 대표에게 음악은 기교의 문제가 아닌 태도의 문제다. 음악에 작업 거는 게 아니라 음악에 작업 당하기 때문이다. 그건 음악에 빠진 자의 특권이기도 하다. 다음은 서울 서대문구 유어썸머에서 만난 이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인디 30주년을 기념해 올해 내내 진행할 인터뷰 중 첫 번째다.
-대표님은 어떻게 음악에 빠지게 되신 건가요?
"밴드 시작은 송골매요. 부모님이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집엔 항상 라디오가 켜져 있었고 그렇게 계속 들었죠. '젊음의 음악캠프 이수만과 함께'('배철수의 음악 캠프' 전신)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TV에선 박남정을 보고 '와 진짜 멋있다' 생각했어요. 전 완전 잡식이어서, 좋아하는 음악이 새로 나온 음악이에요. 그러다가 팝을 굉장히 좋아하는 오빠가 '빌보드 차트라는 게 있대'라는 걸 알려줘서 차트에 나온 음악 CD를 엄청 사서 모았어요."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평생 꿈이라 지금 굉장히 행복한 편이긴 합니다. 저희 때 음악 일을 하고자 한다면, 우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아빠를 만족시킨 뒤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에 나가거나, 음악 관련 회사에 들어가는 게 수순이었잖아요. 그 외의 것들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을 때예요. 물론 음악이 좋아 피아노도 배우고 미디도 혼자 익히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디를 하려고 하다 보니까 컴퓨터를 알아야 되더라고요. 케이크워크 3.0부터 다루기 시작했는데, 그 때 에러가 진짜 많아서 '무슨 프로그램이 이렇게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음악은 안 되겠군'이라는 생각을 슬슬 했죠. 밴드를 결성해 프리버드 오디션도 보려고 했는데, 당시 보컬을 맡은 오빠가 너무 떨어서 오디션도 못 봤어요. 음악 하는 건 '나랑 좀 안 맞나'라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어요."
-그러다 첫 번째 하신 음악 일은 뭐였나요?

-글에서 음악이 들리다니 낭만적인데요.
"그 다음엔 제가 음반을 수입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어요. 샘플을 먼저 받아서 들을 수가 있으니까 또 너무 행복하고 그 다음엔 제가 설명 글을 또 쓰고… 그런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 라세린드 음반이 좋은데, 수입만 하길래 라이선스를 하자고 제안해서 레이블 라브라도어(Labrador)에서 라이선스를 따냈죠. 그 다음 홍보를 해야 하잖아요. 라디오, 광고기획사 등을 찾아 다녔어요. 당시 수입반은 구하기 힘드니까 음악 애호가인 PD님, 작가님들이 라이선스 음반을 되게 좋아하셨어요. 그때 친해졌던 분이 MPMG 이종현 대표님이었어요. 당시 이 대표님이 '유희열의 올댓뮤직' 작가였거든요. 그 때 레이블 운영도 하셨는데 당시 주력 장르이던 힙합이 아닌 새로운 레이블을 하고 싶어하셨어요. 둘이 음악 얘기를 하다 만든 레이블이 해피로봇레코드였어요. 이름도 제가 지었어요."
-저도 대학생 때 정말 많이 들었던 음반들이 속한 레이블이었어요.
"레이블 초창기 때는 가요가 하나도 없었어요. 라이선스 음반들이 많았었거든요. 특히 일본 시부야케이(Shibuya-Kei)(시부야계(係)) 쪽 음악이요. 해피로봇 레코드에서 제가 처음 라이선스 한 음악이 하바드(Harvard)였어요. 새로운 음악을 찾으면서 해외 레이블들의 홈페이지에 다 들어갔거든요. 일부 홈페이지에선 샘플을 들을 수 있게 해줬는데 그러면서 제일 처음 들었던 뮤지션이 하버드였어요. 15초에서 30초가량 딱 듣고 '이거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종현 대표님에게 '이거 합시다'라고 제안했죠."
-정말 듣는 귀를 가지고 계셨네요.
"대표님도 실행력이 굉장히 뛰어나신 분이셔서 '그럼 일본으로 갑시다'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그쪽에 '너네 만나러 가야 할 거 같다. 라이선스를 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죠. 그리고 만나러 갔어요. 해당 레이블은 에스컬레이터 레코즈(Escalator Records)라는 곳이었어요. 시부야케이 원조 격인 닐 앤 이라이자(Neil and Iraiza) 가 속해 있고 유카리 프레시(ゆかりふれっしゅ) 남편분과 또 다른 한 분이 협업해서 만드신 레이블이었던 거예요. 그분들과 잘 얘기해서 하바드 라이선스를 하게 된 거죠. 이종현 대표님이 시부야케이 음악을 '유희열의 올댓뮤직'에서 많이 틀어주셨어요. 이후 하바드를 시작으로 닐 앤 이라이자, 유카리 프레시를 계속 라이선스를 하게 된 거죠. 일본 사람들은 '한번 믿을 만한 파트너다'라고 생각하면 자기 동네 친구들 다 소개시켜 주거든요. 덕분에 다이시 댄스, 스튜디오 아파트먼트 라이선스를 할 수 있었죠. 그래서 당시 일본에서도 인터뷰 하러 왔었어요. '네가 뭔데 시부야케이를 한국에 소개해서 유명하게 만들었냐'가 요지였죠. 하바드가 대학로에서 내한공연해 매진시키고 광고음악에도 엄청 많이 사용됐어요. 한국 영향으로 이후 일본에서 다시 시부야케이 열풍이 불기도 했죠."
-J팝 붐은 예전에 더 대단했었네요.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았을 때 그 정도였으면 엄청난 열풍이었습니다. 그럼 국내 뮤지션들은 언제부터 같이 하시게 된 거죠?
"해피로봇은 레이블 밖에 있는 뮤지션들 중 회사가 없거나 회사 홍보 역량이 부족한 뮤지션들의 홍보를 대신해주기도 했어요. 봄여름가을겨울, 언니네발관 일을 도왔고 그러다가 제대로 레이블에 처음 들어온 뮤지션이 이지형 씨었죠. 그 다음 오지은 씨가 있었고 제가 나오기 직전까지, 랄라스윗, 칵스, 소란, 노리플라이, 데이브레이크 등이 있었습니다."
-그럼 해피로봇을 나와 유어썸머를 만드신 게 언제인가요?

-지금은 김사월 씨, 너드커넥션, 박소은 씨 등 오랜 기간 함께 하고 있는 뮤지션들이 많잖아요. 믿음으로 엮인 느슨한 공동체 같은 느낌이 듭니다.
"딱 그것 같아요. 느슨하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거요. '음악은 그냥 알아서 잘 해주세요. 당신을 믿습니다. 그 대신에 그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공연이나 행사, 홍보는 저희 쪽에서 하는 것을 믿고 따라주세요'인 거죠. 원 소속사가 있었던 두 번째 달이 그런 케이스죠. 유튜브, 인스타그램 전 페이스북이 굉장히 활발했던 때였는데 두 번째 달 음악이 너무 좋아서 알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합주 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게 터졌어요."
-음악가들 존중하는 마음이 가장 우선이네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너무 많이 다양하게 듣다 보니까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구분할 수가 없게 되더라고요. 그냥 다 좋아요. 데모 버전부터도 다 좋죠.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그냥 다 좋은 거예요. 근데 음악에 손을 댄다는 것은 '잘 팔리게 만들고 싶다' 말고는 다른 의도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잘 팔리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다'라고는 할 수가 없을 테니까 다양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또 답이 아닌 것 같아요. 멀리 본다면, 다양성이 무너지는 순간인 거죠."
-회사 이름도 잘 지으셨어요. 여름하면 느긋한 느낌도 들고요.
"그런 느낌도 있는데 반대로 '지금의 당신의 음악과 당신의 삶을 가장 뜨거운 여름날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해요. 또 음악 쪽에 일을 하시는 분들은 여름이 활동에 가장 활발한 시기잖아요. '겨울이 됐든 봄이 됐든 가을이 됐든 항상 당신에겐 여름인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느낌을 담았어요. 유어는 아티스트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고 관객분들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고 팬분들이 될 수도 있죠."
-대표님이 보시기에 예전 인디 신과 지금 인디 신이 달라진 지점이 있나요?
"지금이 훨씬 다양해진 것 같아요. 다양한 신인 뮤지션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서 제가 다 캐치를 못할 정도잖아요. 처음 들어보는 친구도 너무 많고요. 근데 다 잘하고 그게 너무 좋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과 '최대한 많이 같이 일해보고 싶다'라는 욕심이 생기는 편이고요."
-인디 신의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회사 만드신 지 10년이 됐는데 앞으로 고민은 무엇인가요?
"누군가한테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회사가 한번 만들어져서 10년에서 15년 정도 흐른 후에 그 회사가 어떻게 될 건지가 정해진다고요. 더 커질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갈 것인지 아니면 망할 것인지 그게 그때쯤 정해진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희는 더 커져야 된다고 당연히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대로 갈래요'는 말이 안 되는 거고요. 그런데 신이 너무 작다 보니 음악만으로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공연 기획을 더 많이 하는 편이기도 해요. 몇 년 전부터 '공연을 더 잘 만들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기서 잘 만든다는 미션은 뮤지션마다 브랜드 공연을 하나씩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농사 짓는 것처럼 봄에 한 번 짓고 겨울에 한 번 짓고 해서 이걸 발판으로 또 음악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너드 커넥션도 4월에 또 다른 브랜드 공연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음악이 싫어진 적은 한 번도 없으셨어요?
"네 한 번도 없었어요. 전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음악을 싫어할 수가 없어요. 아직도 24시간 내내 거의 음악만 들어요. 항상 새로운 게 나오는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어딘가엔 특이한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반드시 계시잖아요. 음악은 제 삶이 됐어요. 삶 자체가 그냥 음악이 돼버리니까 '음악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아예 없어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인디는 무엇입니까?
"인디펜던트는 여전히 마인드의 문제라 생각해요. 그 마인드를 명확하게 갖고 있다면 돈이 많이 되든 안 되든 인디펜던트라고 생각해요. 음악 안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을 의지가 있고 담고 있어야 인디펜던트인 것이지 돈을 많이 버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음악에 누군가가 토를 다는 것에 반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게 돈 되니까 이렇게 가자'라고 하는 것에 순응한다면, 그 순간 인디펜던트가 무너지는 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표님 인생을 바꾼 노래 세 곡만 꼽아주신다면요.
"그냥 좋아하는 음악이 아닌 지금의 저의 인생을 바꾼 곡이라는 점에서 특별할 것 같은데요. 언젠가의 제 장례식장에서 틀어줬으면 하는 곡들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가고 있거든요. 거기엔 하바드 '클린앤더티', 제가 명음에 있을 때 스티브 바라캇을 담당했거든요. 바라캇도 들어가면 좋을 거 같고. 박남정 님도 굉장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은 싱어송라이터세요. 히트곡의 작사, 작곡을 하고 춤도 잘 만드시고요. 대표곡인 '널 그리며'도 참 좋긴 한데… 제가 B사이드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가끔 너무 힘들 때 무조건 프로젝트 퓨전재즈 밴드인 메트로(Metro)의 '스노 송(snow song)'을 듣습니다"
-그게 인디펜던트 정신 아닐까요? 하하.
"그리고 넥스트도 되게 좋아했었어요. 그러면서 폴스(foals), 뮤트매스(mutemath) 등의 밴드 음악도 좋고, 요즘엔 베일리스톡스(Bailystocks)라는 일본 밴드 음악도 좋아하고…. 정말 장르를 가리지 않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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