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년' 비비 "난 야하고 다정한 사람…" 여가수의 고백

입력 2022.11.18 15:42수정 2022.11.18 16:48
기사내용 요약
데뷔 3년 만에 첫 정규앨범 '로우라이프 프린세스 : 누아르' 발매
'하류인생 공주님' 오금지 캐릭터 내세운 SF 누아르 세계관
타이틀곡만 4곡…분노·사랑 동시에 담아

'나쁜년' 비비 "난 야하고 다정한 사람…" 여가수의 고백
[서울=뉴시스] 비비. 2022.11.18. (사진 = 필굿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전 특정 장르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죠. 엄청난 예술가이기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정도라고 할까요."

대세 싱어송라이터 비비(24·BIBI·김형서)가 '스토리텔러'를 자처했다. 그녀는 18일 오후 2시 발매한 첫 정규앨범 '로우라이프 프린세스 : 누아르(Lowlife Princess: Noir)'에 실린 11곡 전곡의 작사·작곡은 물론 프로듀싱까지 맡았다.

'하류인생 공주님'이라는 역설적인 뜻을 타이틀로 내세운 이번 앨범은 2044년을 배경으로 한 SF 누아르다. '오금지'라는 캐릭터를 뼈대로 한 세계관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어렸을 때 버려졌고 나쁜 년임에도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캐릭터.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람들은 무조건 그녀를 '나쁜 년'이라고 점 찍고 오금지는 '암흑가의 여왕'이 된다. 사랑을 얻기 위해 더 잔혹해지고 더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분노가 만들어낸 인간의 본질을 노래한 '나쁜년(BIBI Vengeance)'이 타이틀곡이다.

비비는 이날 앨범 발매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놈'과 '년'의 무게감이 다른 느낌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년'의 느낌이 좋다"면서 "이 곡을 통해 좀 더 '년'에 쉽게 더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나쁜 주체가 여자라 '나쁜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나쁜년'이 될 것이라는 뜻이에요. 비슷한 감정을 가진 분들이 그런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곡이 됐으면 했습니다."

비비는 직접 쓴 앨범 소개글에서 분노와 욕망, 사랑을 가득 담은 앨범을 만들고 있다 보니 그게 어느새 사람 같아 보이더라고 했다. 자신의 캐릭터와 상황을 투영한 그 여자애의 실루엣과 그 안의 양면성이 마음에 들었고 그게 '나쁜년'이 된 거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작업하다, 오랜만에 들여다본 거울 속 그 애(비비)는 미쳐있었고 앨범엔 도발, 발칙, 전복 등 그간 K팝에서 보기 힘들었던 화법의 곡들과 프로모션 방식이 녹아들게 됐다.

'나쁜년' 비비 "난 야하고 다정한 사람…" 여가수의 고백
[서울=뉴시스] 비비. 2022.11.18. (사진 = 필굿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비비는 이번 앨범에서 '나쁜년'을 비롯해 타이틀곡을 무려 4곡을 내세웠다. 배신당한 연인을 대상으로 쾌감을 전달하는 '조또(JOTTO)', 위트있는 제목과 주제의 '철학보다 무서운건 비비의 총알(Blade)', 세상에 대한 그릇한 기준과 기존 시스템에 대한 반기를 주제로 한 '가면무도회(Animal Farm)'다.

비비는 "서사도 좋지만 중독성이 있는 '뱅어'(banger·대단하거나 정말 좋은 노래를 가리키는 슬랭어)가 계속 나왔으면 했어요. 유행곡이 계속 이어졌으면 했죠. 그래서 '먹고 죽어도 4개'라고 고집을 했습니다"라고 귀띔했다.

특히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협업으로 유명한 비주얼 디렉터 룸펜스(Lumpens·최용석) 감독이 '철학보다 무서운건 비비의 총알(Blade)'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불타오르네' '봄날' 등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한 건 물론 국내 힙합 대부 타이거JK가 이끄는 필굿뮤직과의 오랜 인연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룸펜스는 내년 2월 '제65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뮤직비디오' 후보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옛투컴' 뮤직비디오도 작업했다.

이번에 룸펜스 감독은 비비의 이색적이고 몽환적인 캐릭터를 동양미와 결합시키는데 주력했다. 영상에 심어놓은 독특한 세계관과 정교한 장치들은 다양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다분한데, 이 모든 요소들은 원테이크 방식으로 완성됐다.

'나쁜년' 비비 "난 야하고 다정한 사람…" 여가수의 고백
[서울=뉴시스] 비비. 2022.11.18. (사진 = 필굿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또 특별한 게스트들의 참여도 인상적이다. '나쁜년' 퍼포먼스는 K팝 신의 대표 안무가로 떠오른 댄서 아이키가 도맡았다. 직설적인 노랫말을 쾌감과 함께 전달한다. '나쁜년' 뮤직비디오에는 드라마 '수리남' '천원짜리 변호사', 영화 '한산:용의출현' '비상선언' 등의 흥행 치트키 배우 현봉식이 묵직한 역할로 출연했다. 또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사냥의 시간' 등의 배우 박정민이 '조또'(JOTTO) 뮤직비디오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펼쳤다.

저마다 영화를 방불케하는 각 뮤직비디오는 곡의 스토리텔링을 확실히 뒷받침해준다. "글쓰기에 열정이 가득하다"는 비비가 직접 스토리 콘티를 기획, 오금지라는 캐릭터를 통해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비비는 이 이야기를 추후 웹툰으로 제작할 계획도 있다고 했다.

비비는 자신을 '도화지 같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티피오(T.P.O.)'(time·place·occasion)에 맞게 열심히 적응하려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가운데 일욕심도 많아 과부하가 찾아왔고, 사흘밤을 자지 않고 일하다 잠들지 않으려고 켠 라이브 방송에서 힘들다고 우는 사달이 난 것이다. "친구랑 해야 할 이야기인데 친구가 없고 팬들을 친구처럼 느껴 그렇게 한 거 같아요. 제가 아직 유명인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자신이 굉장히 힘든 일을 당했을 때 '나쁜년'의 노랫말을 썼다고 고백했다. 그 힘들 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든 일을 당했어요. 신고하면 감옥에 가는 정도의 일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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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정민, 비비. 2022.11.18. (사진 = 필굿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회사 대표로서 비비를 적극 지원한 타이거JK는 "비비가 캐릭터에 빠져서 울고 웃는 모습을 모두 봤다"면서 "(앨범 작업기와 앨범을 통해) 비비의 표현과 언행이 이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비비는 가창 실력뿐만 아니라 작사, 작곡, 프로듀싱 능력까지 갖췄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음악을 우연히 들은 타이거 JK·윤미래 부부가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들이 이끄는 필굿뮤직에 영입했다. 2019년 TV SBS 음악 예능 프로그램 '더 팬'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고, 같은 해 싱글 '비누'로 데뷔했다.

R&B와 힙합을 넘나들어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세계적인 뮤직 페스티벌 '코첼라(Coachella)', 'HITC 페스티벌' 등에 출연했다. 지난해 발매한 싱글 '더 위켄드(The Weekend)'는 미국 라디오 차트 20위권에 오르며 한국 솔로 여성 가수로는 드문 기록을 세웠다. 특히 최근 음악계뿐만 아니라 예능, 광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하지만 결코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는 뚝심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조또'는 비속어를 연상시키는 발음으로 다양한 오해를 사고 있는데, 비비는 "일본어로 '잠깐' '관심 없어'라는 뜻이고 한국어로는 '아주' '매우' 등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보드게임의 이름으로도 존재하죠"라면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제목을 바꾸는 것을 두고 회사 측과 논의했지만 영문명을 'JOTTO'로 쓰는 것으로 최종 정리했다. 타이거 JK는 "비비는 곡뿐만 아니라 패션부터 뮤직비디오 맥락까지 모두 중요해서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지원했다"고 전했다.

'나쁜년' 비비 "난 야하고 다정한 사람…" 여가수의 고백
[서울=뉴시스] 비비. 2022.11.18. (사진 = 필굿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곡과 뮤직비디오의 수위가 꽤 높아 음원 플랫폼의 실시간 차트에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비비는 봤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했으니까 괜찮아요"라고 긍정했다. "뮤직비디오 역시 대중의 오감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엔터테이닝하게 즐겨주셨으면 해요."

대중음악 소재로는 다소 무거운 '분노'라는 주제는 사랑과 직결돼 있다고 했다. 비비는 "입체적인 인물이 사랑을 갈구하니까 분노와 사랑 두 가지를 다 담았어요. 사실 분노·슬픔 같은 감정도 모두 숨겨야 할 건 아니에요. 숨긴다고 해도 음악을 들어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해요"라고 여겼다.

비비가 매 앨범을 무겁게만 다루는 건 아니다. 다음은 로맨스에 비중을 싣는다. 이번 '하류인생 공주님' 세계관과 같은 시대인 2044년을 배경으로 사랑과 자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짜아이 - 로맨스', '어느 여가수 이야기 - 로맨스' 두 개의 문구를 놓고 제목을 고민 중이다.
"다음에는 진짜로 진짜 행복한 거 할 거예요. 내가 다 외롭고 아팠으니, 듣는 여러분들은 웃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앨범 소개글과 맞닿는 지점이다.

비비는 결국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야하고, 다정한 사람. 어느 한곳에 치우친 것이 아닌 두 모습을 모두 보여드리고 싶고, 원초적인 저를 보여주고 싶어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계속 사랑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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